56세 남성 환자의 간은 몹시 망가진 상태였다.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으면서 술까지 마셔대 간부전이 심하게 왔다.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 방법이 없었지만, 당장 기증 장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중국 시안 공군 의과대학 시징병원 왕린(Lin Wang) 박사는 이 환자에게 돼지 장기로 만든 ‘체외 순환’ 장치를 연결해줬다. 사흘을 이 장치로 버텨낸 환자는 그 후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돼지 간을 사람 몸에 이식하는 대신, 유전자 조작 돼지 간으로 만든 체외 순환 장치를 연결해 환자를 살려낸 최초 사례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6일(현지 시각) 이번 수술을 소개하면서 “동물의 이종(異種) 장기 활용이 실제 병원에서 적용될 가능성이 넓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기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이식 수술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이들에게 동물의 ‘이종(異種) 장기’가 실제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동물 장기 활용, 정말 코앞에
간부전 환자는 간이 몸속 독성 물질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몸이 심하게 붓는다. 혈액이 간을 통과하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하반신과 복부에도 물이 차게 된다.
의료팀은 이를 막기 위해 돼지 간으로 체외 순환 장치를 만들었다. 본래 동물의 장기를 그대로 사람 몸에 이식하면 심한 면역 거부 반응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의료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법으로 6가지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 간을 썼다. 돼지 유전자 3가지는 없앴고, 대신 인간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3가지를 넣어줬다. 이후 수술로 돼지 간으로 만든 장치를 환자 다리 정맥과 연결했다. 덕분에 환자 혈액은 몸 밖 장치에 있는 돼지 간을 통과하면서 독성 물질을 걸러낼 수 있게 됐다. 면역 거부 반응도 없었고, 간 기능도 점차 좋아졌다. 환자는 사흘간 이 장치를 사용한 뒤 합병증 위험을 낮추기 위해 떼냈고, 이후 기증 장기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의료계에선 이번 수술이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이종(異種) 장기 이식술을 실제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동물 장기를 사람 몸에 영구적으로 이식하는 것보다 위험도 낮을 뿐 아니라, 각종 윤리적 논란도 피할 수 있다. 환자가 실제 장기 이식이 이뤄질 때까지 버텨낼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이 같은 돼지 장기를 이용한 체외 순환 수술은 지난 2월 미국에서도 이뤄진 바 있다. 이때 연구진은 뇌사자 4명의 혈관에 체외 순환 장치를 연결, 이 중 3명에 대한 체외 순환술을 성공시켰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환자를 수술해 성공시킨 것은 그러나 이번이 처음이다.
◇신장부터 폐까지…계속 발달하는 기술
이종 장기 이식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특히 간과 신장 이식이 활발하다. 다만 현재도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식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는 만큼, ‘완전한 이식 수술 성공’이라고 불릴 만한 사례를 찾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선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67세 신부전 환자가 9개월(271일) 동안 정상적인 신장 기능을 유지해 화제를 모았다. 돼지 장기 이식 사례로는 역대 최장 기간으로 꼽힌다. 환자는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직후엔 투석을 받지 않고도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후 다시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말엔 이식받은 돼지 신장을 제거했다. 현재는 다시 신장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안후이 의대와 윈난농대 공동 연구팀은 71세 남성 간암 환자에게 유전자 편집 돼지의 간을 이식, 이후 50여 일 동안 간 기능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환자는 이후 전신 기능이 악화되면서 숨을 거뒀다. 학계에선 비록 환자가 숨지긴 했지만, 당시 이식한 돼지 간이 50일이나 정상적으로 기능했다는 점, 이식 직후 치명적인 면역 거부 반응은 없었다는 점 등에서 적지 않은 의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뇌사자에게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 폐를 이식해 9일 동안 기능을 유지한 사례도 있었다. 중국 광저우의대 부속 제1병원 허젠싱 박사팀이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연구팀과 함께 유전자 교정 돼지의 왼쪽 폐를 뇌사자에게 이식해 9일간 기능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폐는 신장이나 간보다 혈관 구조가 복잡하고 감염에도 취약해 이종 이식이 더 어려운 경우로 꼽힌다. 뇌사자에게 진행한 수술이지만, 9일 동안 거부 반응 없이 기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진전을 보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전 세계에선 현재도 10분마다 한 명꼴로 장기 이식 대기 명단에 있던 환자가 제때 장기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면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