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의 중국 내 물질 특허가 오는 20일 만료돼,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가격 인하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특허 만료를 앞두고 중국 내에서 복제약(제네릭)과 자체 개발 비만 치료 신약들이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 2위 국가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와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장악해 온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구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바이오기업 항저우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Hangzhou Sciwind Biosciences, 이하 사이윈드)가 개발한 비만 신약 에크노글루타이드(Ecnoglutide) 주사제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ational Medical Products Administration·NMPA)로부터 성인 과체중·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 마운자로와 마찬가지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로, 주사제다. 이는 기존 GLP-1 계열 약물 대비 체중 감소와 대사 개선에 중요한 특정 신호 경로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임상 3상에서 48주 기준 평균 약 15% 수준의 감소 효과가 보고됐고, 전체 환자의 약 92%가 5% 이상 체중 감소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고비는 글로벌 임상 3상에서 68주 기준 평균 체중 약 15% 감소 효과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시험 구조가 서로 달라 직접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으나 수치만 놓고 보면 체중 감량 효과는 위고비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결국 가격 경쟁력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이 약의 판매·유통권이다. 중국 내 판권은 미국 제약기업 화이자(Pfizer)의 중국법인이 사들였고, 한국 내 판권은 2024년 계약을 맺은 HK이노엔이 보유하고 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제2형 당뇨와 비만을 대상으로 국내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라며 “연내 40주 투약을 완료한 뒤 허가 신청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약뿐 아니라 복제약의 공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중국 ‘지우위안 지네틱 바이오파마슈티컬(지우위안)’이 자사가 개발한 위고비 복제약의 허가 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업계에선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가격 인하 압박이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인도, 브라질 등에서도 잇따라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 내 특허는 2028년 6월 만료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장을 선점한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도 가격 조정을 비롯한 각종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각각 자사 비만치료제의 중국 내 가격을 작년 12월부터 인하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내년 1월 1일부터 위고비 주사, 먹는 위고비, 먹는 당뇨약 ‘리벨서스’의 미국 내 도매구입가격(WAC) 정가를 약 35∼50% 인하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 중에선 한미약품, 셀트리온, HK이노엔, 일동제약, 삼천당제약 등이 이 시장을 노리고 신약과 복제약을 개발 중인데, 이들의 시장 전략에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국내 임상 3상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품목 허가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일동제약도 하루 한 번 먹는 비만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LP-1 계열의 경구형 신약 후보 물질 ‘ID110521156’이다. 올해 기술 수출과 임상 2상 진입에 성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천당제약은 지난해 경구용(먹는 약) 위고비 복제약에 대한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에 성공했다. 경구용 위고비의 제형 특허는 미국, EU, 일본 등 주요국에서 2039년까지 유지돼, 주사제 특허보다 만료 시점이 뒤에 있다. 삼천당제약은 자체 제형 기술인 ‘S-PASS’를 통해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비만약인 ‘위고비필’의 제형 특허를 회피할 수 있다고 설명해 왔다.
셀트리온은 주사제와 경구제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사중 작용 주사제 ‘CT-G32′는 GLP-1을 기반으로 네 가지 호르몬 수용체에 동시에 작용하도록 설계됐다. 식욕 억제를 넘어 지방 분해 촉진과 에너지 대사 조절까지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 동물 효능 평가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을 목표로 한다.
업계에서는 국산 비만약들이 글로벌 비만치료제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약물의 국내 특허 만료 기간이 달라 국내에선 중국, 미국에서의 가격 인하 효과가 국내에서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 “국내 비만치료제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는 데도 국산 비만약의 빠른 시장 진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GLP-1 수용체 작용제
우리 몸이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GLP-1이라는 호르몬의 작용을 흉내 낸 약이다. 이 호르몬은 뇌에 ‘배부르다’라는 신호를 보내 식욕을 줄이고, 위에서 음식이 내려가는 속도를 늦춘다.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이러한 기능을 인위적으로 강화해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