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바이오텍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접고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이 회사는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차원태 차병원·차바이오그룹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차원태 신임 대표는 차바이오그룹을 일군 창업자 차광렬 차병원·차바이오그룹 글로벌연구소장의 장남이자, 고(故) 차경섭 차의과학대학교·차병원 명예이사장의 손자다. 차바이오텍 대표직을 총수 일가가 직접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에선 책임 경영 강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차 대표가 수익성 개선 과제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차바이오그룹 설립자인 차광렬 연구소장은 난임, 줄기세포, 재생의학 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은 권위자다. 1998년 세계 최초로 난자를 급속 냉동하는 방식(유리화 난자 동결법)을 개발해 난임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당시 그가 처음으로 설립한 난자 은행은 현재는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차바이오텍은 2002년 11월 차병원그룹 내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제 개발을 위해 설립된 회사다. 현재 주요 사업은 제대혈 보관,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연구개발(R&D), CGT 위탁개발생산(CDMO), 헬스케어 IT 사업 등이다.
◇ 오너 일가·재단 얽힌 지배구조…차광렬-차원태 승계 뚜렷
그룹 안팎에선 차원태 부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은 예견된 변화라는 반응이다. 그룹 내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차 대표가 사내이사로 선임된 점에 비춰 예상된 순서였다”고 말했다. 현재 차원태 부회장이 그룹 재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경영 승계 구도가 본격화한 것이다.
차원태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지난해 9월부터다. 차 부회장은 앞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차병원을 운영하는 차헬스시스템즈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할리우드차병원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지냈고 차의과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작년 9월 차병원·차바이오그룹 부회장 겸 차바이오텍 CSO로 선임된 데 이어 올해 1월 차바이오텍 사내이사에 올랐다.
차바이오텍의 지배구조는 총수 일가와 계열사, 재단이 결합한 형태다. 지난 2월 공시 기준 개인 최대 주주는 차광렬 차병원·차바이오그룹 글로벌연구소장(옛 직함 회장)으로, 그의 지분율은 4.34%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비상장사 케이에이치그린이 지분 9.4%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차바이오텍을 간접 지배하는 구조다. 케이에이치그린은 차 소장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다.
차원태 부회장의 차바이오텍 주식 지분율은 3.31%로 차 소장의 세 자녀 중에선 가장 높다. 차 대표의 장남인 차민제 군(0.04%)도 특수관계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다. 여기에 성광학원(차의과학대학교 운영)과 성광의료재단 등 그룹 재단이 약 4%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 우호 지분 역할을 하고 있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치면 약 25% 안팎으로 경영권은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라는 평가다.
◇ 외형 성장 넘어 적자 돌파구 과제
차바이오텍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수익성 개선이다. 지난해 이 회사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보다 21.4% 늘어난 약 1조268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이 약 475억원으로 적자가 이어졌고, 장부상 순손실 규모도 약 1392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다. 별도 기준 작년 매출액은 622억원, 영업손실 47억원, 당기순손실은 330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가 R&D 투자와 사업 영역 확장으로 외형이 성장하고 있지만 재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결 기준 법인세 비용 차감 전 순손실은 전년 약 62억원에서 1년 만에 1300억원대로 급증했다. 이는 차바이오텍의 자본(약 8203억원)의 약 16% 비중이다. 자본잠식 단계는 아니지만 손실 확대 속도가 빨라 재무 건전성 우려가 있다.
회사 측은 “미국 자회사 마티카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신사업 투자, LA 할리우드 차병원 신축병동 건설비용 증가, R&D 파이프라인 투자 확대 등 비용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의 공정가치 평가와 회계상 이자,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손 등 비현금성 요인도 장부상 순손실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차 부회장은 최근 “차바이오그룹의 핵심 사업을 CGT, 헬스케어, 라이프사이언스 3대 축으로 재편해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표 체제 변화와 함께 차바이오텍의 조직 구조와 사업 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차바이오텍은 신약 개발을 위해 자가 세포치료제와 동종 세포치료제 개발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2024년 6월 차바이오텍에 합류한 남수연 사장이 R&D를 이끌고 있다. 남수연 사장은 유한양행에서 항암제 ‘렉라자’를 발굴하고 지아이이노베이션에서는 다수의 기술 수출 성과를 낸 국내에서 손꼽히는 신약 개발 전문가다.
핵심 파이프라인은 NK세포를 활용한 면역세포치료제 CHANK-101다. 이는 현재 간암을 적응증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22년 임상 1상을 완료해, 첨단재생의료법 제도에 따른 연내 조건부 승인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평가된다. 회사는 지난해 간암 대상 첨단재생의료 치료 계획을 제출했다. 조건부 승인이 이뤄지면 상업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난소암을 적응증으로 한 세포치료제 CHATIL-101도 개발을 진행 중이다. 작년 국가신약개발사업 지원과제로 선정돼 2027년까지 정부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임상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건부 치료 승인을 추진할 계획이다.
차바이오텍이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등과 구성한 컨소시엄은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글로벌 K-cell 뱅크·라이브러리 구축’ 국가 세포특화연구소로 선정됐다. 이 사업엔 2028년까지 총 450억원이 투입된다.
다른 주요 축은 클라우드·인공지능(AI) 등 IT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이다. 회사는 LG CNS와 협력해 약 100억 원을 투자해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또 한화손해보험·한화생명과 함께 약 1000억 원 규모 자본을 기반으로 보험과 헬스케어를 결합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차바이오그룹은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룹 계열사인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가 총 800억원을 투자해 카카오헬스케어 지분 약 43%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오르는 구조다. 기존 모회사인 카카오는 약 30%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로 남아 협력 관계를 이어갈 예정이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카카오에서 2022년 3월에 분사한 기업으로, 혈당관리서비스 ‘파스타’가 핵심 사업이다. 이는 혈당 측정기와 혈당 관리 앱을 연동한 서비스다.
시장에선 차바이오텍이 투자 대비 수익 창출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는 “R&D 투자와 사업 확장을 실제 현금 창출 구조로 연결시키는 것이 차원태 대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며 “오너 경영 체제에서 경영 효율화를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