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사회가 별다른 이유 없이 1년 이상 미뤄온 신임 총장 선임안을 부결시키면서 책임론이 일고 있다. 앞으로 재공모에 6개월 안팎이 소요되면 리더십 공백 장기화로 KAIST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KAIST 이사회가 총장 선임을 부결한 것은 개교 5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과학계에선 이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이번 총장 선임안을 부결시키고 정부가 염두에 둔 새 후보 공모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고, 실제 당연직 이사(정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무더기 기권표가 나와 총장 선임안이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형 총장이 27일 이사회에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면, KAIST는 이균민 교학부총장이 총장 직무대행으로 일하게 된다.
◇정치적 입김 작용?
KAIST 이사회는 지난 26일 제18대 총장 선임을 위한 표결을 진행했다. 총장 후보는 지난해 2월 임기 종료 이후 차기 총장 선임 절차가 지연돼 임기를 이어온 이광형 KAIST 총장과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이용훈 전 UNIST(울산과학기술원) 총장 등 세 명이었다. 이날 이사회 표결에는 KAIST 이사 15명 가운데 이광형 총장을 제외한 14명이 참여했다.
이사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1·2차 투표를 했지만 과반(8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후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정호 교수 한 명만 대상으로 최종 투표에 나섰지만, 찬성표가 과반을 넘지 못해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7명 이상이 반대 또는 기권한 결과다. KAIST의 한 교수는 “새 총장 선임을 1년이나 미룬 이사회가 이번 부결로 6개월 이상 리더십 공백을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과학계 관계자는 “이사회가 처음부터 새 총장을 선출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세 후보 중 누가 최종 후보에 올랐더라도 부결됐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염두에 둔 새로운 후보를 총장으로 뽑기 위해 부결을 미리 준비해온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다는 뜻)’ 표결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과기정통부 측은 “낙하산 인사는 가능하지도 않다”며 “앞으로 이사회가 정상 절차를 밟아 총장을 선임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공모로 친정부 인사를 총장 후보로 올린다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했다.
◇“이사회가 정부 산하기관이냐” 부글부글
KAIST 이사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표에 참여한 이사 14명 중 3명이 과기정통부, 교육부, 기획예산처 소속 고위 관료로 당연직 이사이고, 4명은 정부 산하 기관과 출연 연구원 등 소속이다. 정부 입김에 영향받을 수 있는 이사 7명이 한 몸처럼 반대 또는 기권할 경우, 과반 득표가 불가능해 총장 선임안이 통과될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이번 이사회는 총장 선임 표결 당일에 임기가 끝나는 이사가 5명이나 된다는 점도 구설에 올랐다. 총장 선임을 무산시켜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임기 종료 이사들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KAIST 교수협의회는 총장 선임 부결로 학교가 중장기 발전 전략을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부 교수들은 “국가 전략 대학의 자존심을 무너뜨려 참담하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