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응급실 뺑뺑이’를 끊겠다며 칼을 빼 들었다. 심정지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병원 문을 전전하며 수용 여부를 묻는 풍경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중증 환자에 대해서는 119구급대가 아닌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직접 이송 병원을 찍어주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25일 “응급환자의 골든타임 내 적정 응급의료기관으로의 신속한 이송과 효율적 응급의료체계 운영을 위해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은 광주광역시·전북특별자치도·전라남도 등 3개 시·도에서 오는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진행된다.

한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입구./뉴스1

◇중증은 더 빨리, 119는 처치에 집중…이송체계 4대 개편

이번 시범사업의 밑그림은 네 갈래다.

첫째, 시·도별 응급환자 이송지침을 중증도별·상황별로 촘촘히 손질한다. 병원·구급대·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한 테이블에 앉아 합의해 ‘작동 가능한 지침’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둘째, 지침 개정만으로 부족한 부분에는 정부가 마련한 ‘이송체계 혁신안’을 덧댄다. 핵심은 중증응급환자(pre-KTAS 1~2)에 대해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이송 병원 선정을 지원하는 구조다. 반면 중등증 이하(pre-KTAS 3~5)는 개정된 지침에 따라 사전 약속된 절차로 이송한다.

셋째, 정보 공유를 강화한다. 구급대의 환자 정보, 병원의 병상·인력·장비 현황을 실시간으로 묶어 ‘눈에 보이는 자원 지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넷째, 응급의료·구급 전문가 등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시범사업 종료 뒤 전국 확대 여부와 개선안을 마련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증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맞는 치료를 더 신속하게 받을 기회를 보장하고, 이송-전원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119구급대는 현장 처치에 더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19 정보 전송, 상황실 병원 지정…지연 땐 우선수용

세부 절차는 이렇다.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19구급대는 환자 정보를 광역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구상센터)에 동시에 전송한다.

광역상황실은 이 정보를 토대로 적정 병원을 추려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이송 병원을 선정해 현장에 통보한다. 긴급성이 특히 높은 경우에는 구상센터와 광역상황실이 협력해 병원을 신속히 정한다.

만약 적정 시간 안에 병원 선정이 이뤄지지 않아 이송이 지연될 우려가 있을 경우, 광역상황실이 의료자원 현황을 참고해 ‘안정화 처치가 가능한 우선수용병원’을 지정한다. 일단 받아 치료하라는 뜻이다. 다만 심정지처럼 즉각 처치가 필요한 환자는 기존 지침에 따라 정해진 병원으로 곧바로 이송한다.

또 119구급대가 이송한 중증 환자 중 최종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 119가 전원(轉院)을 지원한다.

중등증 이하 환자는 119구급대가 이송지침과 병원 자원 현황을 확인해 곧바로 병원을 정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사전에 의료기관에 환자 정보를 공유한다.

절단된 손·발을 붙이는 수지접합 수술, 소아 응급, 분만 등 저빈도·고난도 질환에 대해서는 인근 시·도 의료자원까지 고려해 상황별·증상별 이송 병원 목록을 정비한다.

이 체계의 관건은 정보다. 정부는 119구급대가 현장에서 파악해야 할 환자 정보 항목을 재정비하고, ‘119구급스마트시스템’을 통해 이를 병원과 광역상황실에 신속히 전달하도록 한다. 이 시스템은 현장 구급대원이 환자 정보를 구상센터·광역상황실·병원에 전송하고, 병원에 수용 요청과 회신을 주고받는 데 쓰인다.

병원의 중환자실, 수술실, MRI·CT 등 장비 가동 현황도 정비해 환자 수용 능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최신 상태로 관리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권역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진 모습./뉴스1

◇시범 점검 후 전국 확대…센터 확충·인력 대책 병행

시범사업을 점검하기 위한 운영위원회도 설치된다. 보건복지부·소방청·중앙응급의료센터·시도 응급의료 담당 부서·지역 소방본부·응급의료지원단 등이 참여한다. 세부 가이드라인과 사례 점검 계획을 논의하고, 성과를 분석해 올해 하반기 중 전국 확대 표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시범지역 외 지역에 대해서도 이송지침을 정비할 계획이다. 지역별 순회 간담회를 열어 의료 여건에 맞는 보완책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겠다며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기준을 보완하고,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추가 확충한다. 지역 병원에서 근무할 필수·응급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설립도 추진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사회 특성에 맞는 해결 방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논의의 핵심 주체가 돼야 한다”며 “응급실 미수용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와 복지부, 소방청 모두 공동의 책임의식을 갖고 시범사업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은 “중증 응급환자에게는 골든타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시범사업은 적정 병원에 신속히 이송할 최선의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소방은 국민이 길 위에서 불안에 떨지 않도록 생명 보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