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독서나 신문 읽기, 외국어 공부 등으로 두뇌를 꾸준히 자극한 사람은 뇌 속에 치매 유발 물질이 쌓여도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5~7년 가량 늦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지 활동을 열심히 할수록 뇌가 손상에 버티는 힘, 이른바 ‘뇌의 맷집(인지 예비력)’이 강해진 덕분에, 증상도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미국 시카고 러시대 메디컬 센터 연구팀이 평균 연령 80세 어르신 1939명을 8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다. 연구 결과는 이달 국제학술지 ‘뉴롤로지(Neurology)’에 소개됐다.
◇신문 읽고 책 읽을수록 치매 늦게 왔다
연구팀은 평균 연령 80세 어르신 1939명을 모집, 약 8년 동안 정기적으로 인지 기능 검사를 실시하는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의 기억력이나 사고력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실시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상세한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어릴 때부터 80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활발하게 인지 활동을 했는지 물은 것이다. 가령 6~18세까지 아동기에 책이나 신문은 얼마나 읽었는지, 외국어는 얼마나 배웠는지,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 습관은 어땠는지, 도서관은 자주 이용했는지, 체스를 배웠는지 등을 묻고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점수화했다. 연구팀은 또한 알츠하이머로 사망한 이들의 뇌 부검 자료 1000여 건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뇌의 생물학적 손상 정도가 비슷해도 평소 두뇌를 많이 쓴 사람일수록 실제 인지 기능은 더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꾸준하게 책이나 신문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겨 할수록 뇌에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이 쌓여도 증상은 늦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두뇌 많이 쓸수록 망가져도 잘 버틴다
실제로 인지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상위 10% 78세에 증상이 나타난 반면, 활동이 가장 적었던 하위 10% 그룹은 그보다 훨씬 이른 68세에 증상이 나타났다. 평소 공부하고 읽는 습관이 치매 시계를 뒤로 늦춘 셈이다.
치매의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 인지 장애(MCI)’를 비교했을 땐 차이가 더 컸다. 두뇌 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억력이나 사고력 저하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7년 가량이나 늦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안드레아 자밋(Zammit) 교수는 “평생 지속적으로 배우고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핵심이었다”면서 “책 읽기, 신문 읽기, 외국어 학습, 글쓰기, 박물관 다니기, 체스·체커 같은 게임 계속하기 등이 인지 활동에 도움을 준다. 이는 사회 경제적 지위가 주는 영향보다도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소위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이란 개념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지 예비력은 뇌가 손상되거나 늙어도, 다른 신경망을 활용해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평생 두뇌를 많이 쓸수록 신경 연결이 촘촘해져서, 나중에 뇌 손상이 생겨도 버티는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선행 연구도 여러 건 있다. 2022년 에딘버러 대학교 연구팀은 어릴 때 악기 연주를 한 경험이 있을수록 노년기 인지 기능 테스트에서 훨씬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심리학과 노화(Psychology and Aging)’에 발표한 바 있다.
미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연구팀도 2003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JM)에 주 1회 이상 춤을 배우거나 퍼즐을 푸는 것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