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당시 백신에서 곰팡이·머리카락·이산화규소(실리카) 등 제조 과정에서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는 이물이 발견됐는데도, 방역 당국이 접종을 중단하지 않은 채 백신을 계속 접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물 신고 이후에도 동일 제조번호(로트번호) 백신 약 1420만회분이 추가로 접종됐다.

지난해 6월 16일 광주 북구보건소 접종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광주 북구

감사원이 23일 공개한 ‘코로나19 대응실태 진단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2021년 3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의료기관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이물 신고 1285건을 접수했다.

이 중 835건(65%)은 접종 과정에서 고무마개 파편이 떨어진 사례였다. 곰팡이·머리카락·이산화규소 등 위해 우려가 있는 이물 신고도 127건(9.9%)에 달했다.

정부 매뉴얼에 따르면 백신에서 이물이 발견되면 질병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질 검토를 요청해야 하고, 식약처는 성분 분석 등을 거쳐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해당 제조번호 백신에 대해 접종 보류나 수거·검사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감사원에 따르면 질병청은 이물 신고를 식약처에 통보하지 않고 제조사에만 알렸다. 제조사의 자체 조사 결과를 별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사안을 종결했다. 그 사이 위해 우려 이물이 신고된 제조번호 백신 약 1420만회분이 추가로 접종됐다.

유효기간이 만료된 백신 접종 사례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2021~2023년 사이 2703명이 유효기간이 지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코로나19 예방접종 실시 기준 등에 유효기간 만료 백신 접종 시 피접종자에게 이를 알리도록 명시하지 않았고, 재접종 여부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2703명 중 1504명(55.6%)은 재접종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질병청은 이들에게 예방접종 증명서를 발급했다.

2022년 5월 6일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대본회의에 참석해 있다./뉴스1

감사원은 또 문재인 정부 당시 방역 체계의 구조적 혼선도 지적했다. 질병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범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지방정부 등이 동시에 가동됐지만, 법령과 매뉴얼에 기관별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업무 지연과 혼선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와 질병청은 사전 조율 없이 엇갈린 메시지를 내놨다. 복지부가 “선거 유세는 5인 이상 모임 금지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자 질병청은 “적용 대상”이라고 했고, 면 마스크의 예방 효과와 백신 접종 인센티브 여부를 두고도 상반된 설명이 나왔다.

중앙·지방정부 간 엇박자도 있었다. 중앙정부가 자가 검사 키트 도입에 신중론을 펴는 사이 서울시는 도입 계획을 밝혔고, 실내 마스크 의무를 단계적으로 완화한다는 중앙 방침과 달리 일부 지자체는 자체 판단으로 의무를 해제했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청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2020년 당시 백신 도입 협상 주체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조직 개편이 이뤄지면서, 복지부와 질병청이 서로 상대 기관 업무로 인식해 협상이 한 달 이상 지연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역학조사에서도 허점이 있었다. 항공기 탑승 확진자 발생 시 인접 좌석 승객은 격리했지만, 해당 구역 승무원은 접촉자로 분류하지 않아 최소 658명에서 최대 9514명이 격리되지 않았다. 지역 간 접촉자 정보 공유 시스템이 없어 이메일·공문에 의존하다 격리가 누락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이 23일 충북 청주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제8차 호흡기 감염병 관계부처 합동대책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감사 결과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물 백신과 관련해서는 “접종 과정에서 이물이 보고된 경우 해당 백신은 격리·보관했고 실제 접종된 사례는 없다”고 해명했다.

또 “제조사 조사 결과 동일 제조번호 백신 1420만회분에서 제조·공정상 품질 이상이 발견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질병청은 “팬데믹 당시 식약처를 거치지 않고 제조사에 직접 조사 의뢰를 한 경우가 많았고,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제조번호 전체에 대한 접종 중단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백신 품질 이상 발견 시 신고 및 품질 조사 의뢰 절차를 구체화하고, 오접종 관리 지침과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식약처도 긴급사용 승인 백신에 대한 품질 검증 제도를 도입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안전부 등 4개 기관에 총 31건의 개선 사항을 통보했다.

다만 2020년 3월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이 “국가적 위기 대응 과정에서 개인 비리가 없는 한 문책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을 들어,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 인사 조치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