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고 노화 속도를 줄이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Pixabay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영국에 이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에서도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 백신이 대상포진은 물론 치매까지 20%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치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예방에 ‘꿩 대신 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의 파스칼 겔트세처(Pascal Geldsetzer) 교수 연구진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주민 46만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 접종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5년 반 동안 치매로 진단받는 비율이 절대 수치로 2%포인트 낮았다”고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랜싯 신경과학’에 발표했다. 65세 이상 연령대의 치매 발생률을 감안하면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치매에 걸릴 위험이 기존보다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신 정책 변화로 치매 예방 효과 확인

치매는 퇴행성 뇌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등으로 기억력과 언어 능력, 판단력 같은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후천적 장애이다. 치매 환자의 3분의 2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신경세포가 죽어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제약사들은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항체 치료제를 잇따라 출시했지만, 조기 진단할 방법이 없어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치료제가 발병 초기 단계에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예방이 최선이지만 아직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대상포진 백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017년 1월 1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온타리오주 일차 의료 기관에서 1만789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온타리오주에서 대상포진 백신을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연령 기준은 만 65~70세이다.이 연령대 전후로 치매 발병자를 조사했더니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은 비접종자보다 치매 진단 위험이 20%가량 감소했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영국에서 먼저 확인됐다. 겔트셀처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셀’에 웨일스 주민 중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71~88세 고령자 28만여 명의 의료 기록을 7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은 비접종자보다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37% 줄었을 뿐 아니라 치매 진단 위험도 20% 감소했다.

당시 연구 결과는 백신 부족 사태 덕분에 나왔다. 웨일스 정부는 2013년 9월 대상포진 백신이 부족해지자 그해 79세가 되는 사람에게만 1년간 무료 접종 기회를 제공했다. 이미 80세 이상인 주민들은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른 요인과 상관없이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 임상시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진은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어 이번에 캐나다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미국 머크(MSD)의 대상포진 생백신인 조스타박스(왼쪽)와 영국 GSK의 유전자 재조합 사백신인 싱그릭스. /각 사 제공

◇생백신보다 사백신이 치매 예방에 더 효과

대상포진은 신경계에 잠복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다시 활동하면서 유발하는 신경 질환이다. 어릴 때는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수두가 되지만, 어른이 돼서 잠복한 바이러스가 활동하면 피부에 줄 모양 발진과 함께 극심한 신경통을 일으키는 대상포진이 나타난다.

현재 시판 중인 대상포진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과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백신(사백신) 두 종류로 나뉜다. 약독화 생백신은 살아 있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해 만든다. 세계 최초로 나온 대상포진 백신인 미국 머크(MSD)의 조스타박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가 이 방식이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중국 햄스터 난소(CHO) 세포에 넣어 만든다. 세포를 배양하고 정제한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싱그릭스가 이 방식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치매 위험을 줄였다고 확인된 대상포진 백신은 MSD의 생백신인 조스타박스였다. 하지만 조스타박스는 상대적으로 효능이 낮고 고령층에서 면역 효과가 떨어져, 국내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공급이 중단됐다. 조스타박스 퇴출 이후 GSK의 싱그릭스가 대상포진은 물론이고 치매 예방에도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싱그릭스 승인 이후 영국에서 생백신 접종이 중단된 것을 계기로 두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6년간 추적했다. 2024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싱그릭스 접종자는 조스타박스 접종자보다 치매 진단까지 6개월이 더 걸렸다. 예방 효과가 더 좋다는 의미다.

물론 생백신은 여전히 대상포진 백신으로서 장점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스카이조스터는 2017년 시장에 진입한 후 MSD의 조스타박스 철수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싱그릭스는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해야 하지만 스카이조스터는 1회 접종으로 끝난다. 가격도 싱그릭스의 3분의 1 수준이다. 접종 후 팔 통증과 발열 등 부작용이 덜한 점도 장점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어릴 때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에 감염되면 온몸에 물집과 발진이 생기는 수두가 발생한다(왼쪽). 바이러스는 척수 신경세포에 잠복하고 있다가(가운데) 성인이 돼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다시 증식해 피부의 국소적인 부분인 피부분절에 띠 모양 물집과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을 일으킨다(오른쪽)./MDPI

◇노화 속도 늦추는 효과도 보여

대상포진 백신의 추가 이득은 치매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 노화학부의 김정기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노년학 저널: 시리즈 A’에 대상포진 백신이 노화를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70세 이상 성인 3884명을 대상으로 염증과 시간 경과에 따른 DNA 영향 등 7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건강한 노화 점수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이전에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염증 수치가 현저히 낮고 건강한 노화 종합 점수가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상포진 백신이 어떻게 치매와 노화를 막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대상포진을 예방해 신경 염증을 줄이고, 면역 체계를 더 강화한 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잠복한다는 점에서 백신이 신경 손상을 막아 인지 기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상포진 백신이 유도한 면역세포들이 면역력을 높여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여러 국가에서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은 노년층에게만 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젊은이들도 치매 방지를 위해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으라고 권장하려면 증거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신 정책 변화로 자연 임상시험을 했지만, 치매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어떤 연령대에 더 효과가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엄밀하게 설계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겔트셀처 교수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권유한다. 그는 “여러 국가에서 나온 결과를 보면 7년 동안 새로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 5명 중 1명은 대상포진 백신이 예방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며 “내가 직접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을 만큼 증거는 충분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Lancet Neurology(2026), DOI: https://doi.org/10.1016/S1474-4422(25)00455-7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2026), DOI: https://doi.org/10.1093/gerona/glag008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11.007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