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피 몇 방울’로 치매 발병 시점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미 연구팀이 혈액 속 특정 단백질의 축적 속도를 분석해 인지 장애가 나타날 시기를 역산하는 모델을 개발했다고 19일 네이처지가 보도했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의학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렸다. 단순히 피검사를 통해 치매 여부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젠 ‘앞으로 언제 치매가 발병할지’ 타임라인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시계가 등장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내가 언제 치매 걸릴지, 피검사로 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질병으로 꼽힌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뇌에 쌓여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이 독성 단백질들은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십수 년 전부터 뇌에 쌓여 뇌 기능을 잠식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은 대규모 알츠하이머 연구에 참여한 60세 이상 성인 약 603명의 혈액 검사 결과와 인지 능력 평가 등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혈액 속 나쁜 단백질(p-tau217)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사람마다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마다 이 단백질이 쌓이는 속도는 제각각 다를 수 있지만, 한 번 정해진 그 사람만의 축적 속도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사람의 뇌에 매년 5만큼 비정상 타우 단백질이 쌓인다면, 10년 후에도 그의 뇌엔 5만큼씩 쌓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개인마다 다른 ‘일정한 속도’ 덕분에 발병 시점을 역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같은 속도로 쌓여도 치매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나이에 따라 달랐다. 가령 60세에 p-tau217 수치가 높게 나타난 경우엔 실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반면 80세 환자의 뇌에서 비슷한 단백질 수치가 나왔을 경우엔, 11년 후 증상이 나타났다. 80세의 경우엔 노화로 인해 뇌의 기초 체력이 떨어진 상태인 만큼 증상이 더 빨리 나타난다는 뜻이다.
◇아직은 3~4년 오차 범위 있어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앞으로 알츠하이머 증상 발현 시기를 예측하는 데 쓰일 뿐 아니라, 여기에 맞춰 증상 발생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다양한 임상 시험을 설계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봤다.
다만 아직 3~4년가량의 오차 범위는 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개별 환자에게 ‘당신의 알츠하이머 발생 연도가 정확히 언제’라고 말해줄 수준까지는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수전 쉰들러(Schindler) 교수는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선 후속 연구가 아직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더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진행해서 오차 범위를 줄여나가겠다”고 했다. 쉰들러 교수는 또한 다른 연구자들이 더 나은 방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연구 내용을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진화하는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
이처럼 피검사로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같은 병을 진단하는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법’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진화하는 추세다.
지난달엔 스웨덴 연구진이 채취한 혈액을 건조한 샘플로도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징후를 상당히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동안 혈액 속 바이오마커를 측정할 땐 검체 처리와 보관이 쉽지 않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건조 혈액 측정 기법’을 개발했고, 이렇게 말린 혈액으로도 뇌척수액 검사만큼이나 정확하게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선 병원에서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위해 피검사를 활용하는 경우는 계속 늘고 있다. 미 FDA는 지난해 5월 알츠하이머 유발 단백질을 혈액으로 분석하는 ‘루미펄스(Lumipulse)’ 검사를 승인했다. 현재 공식 의료 기기 승인 절차도 밟고 있다. 미 메이요 클리닉도 최근 혈액 바이오마커 기법을 알츠하이머 진단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