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에스티가 뇌전증(腦電症·간질)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급여 등재를 신청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세노바메이트는 국산 신약이지만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판매하고 국내는 처방하지 않아 환자들이 해외에서 처방받는 경우가 있었다. 세노바메이트 급여가 적용된다면 내년쯤 국내에서 환자 처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뇌전증은 뇌 특정 부위에 있는 신경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해 반복해서 발작하는 질환이다. 세노바메이트는 기존 치료제보다 발작을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해 동아에스티가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판매한다.
◇세노바메이트 급여 기준 검토 중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11월 국산 신약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았다. 동아에스티가 이후 급여 등재를 신청해 현재 심평원에서 급여 기준을 검토하는 중이다. 심평원 급여 기준을 통과하면 경제성 평가를 거쳐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공단에 약가(藥價) 협상 개시 명령을 내린다.
약가 협상이 종료되면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급여가 최종 결정된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이 기간이 보통 1년 정도 걸린다”면서 “2027년 상반기 급여를 등재하고 세노바메이트를 국내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세노바메이트는 국산 신약이지만 해외에서 먼저 출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2019년, 유럽에서 2021년 허가를 받아 각각 ‘엑스코프리’, ‘온투즈리’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3분기 미국에서만 17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는 시간이 걸려 국내 출시가 늦어졌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韓 신약인데 국내 환자 처방 어렵고…가격 줄다리기도
업계에서는 국내 약가가 신약 출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약가가 낮아 해외에서 좋은 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해외에서 약가를 책정하고 국내에 들여오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신약의 평균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42% 수준이다.
동아에스티가 개발한 국산 신약 시벡스트로도 해외에서만 처방이 가능하다. 시벡스트로는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수퍼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하는 수퍼항생제다. 시벡스트로는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아 해외에서 판매 중이다.
시벡스트로는 국내에서 2015년 허가를 받았지만 출시하지 않았고 2020년 허가를 자진 반납했다. 당시 해외와 비교했을 때 약가가 높은 편이 아니라 국내 판매를 포기했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왔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국내 출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특허가 만료돼 경쟁 제품(복제약)이 출시됐고 시벡스트로가 단일 적응증으로 허가를 받아 국내 환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보령이 개발한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도 약가를 둘러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카나브는 2010년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현재 멕시코, 싱가포르 등 중남미와 아시아에 진출했다. 카나브에서 파생한 복합제로 구성된 제품군인 카나브 패밀리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119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보령 매출의 15%를 차지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복제약 출시를 앞두고 카나브 약가를 30㎎ 기준 439원에서 307원으로 낮춘다고 고시했다. 보령은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 인하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이 지난해 8월 받아들였다. 복지부는 항고했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항고를 기각했다. 복지부가 재항고를 포기하며 집행 정지 결정이 확정됐다. 카나브는 당분간 기존 약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보령 관계자는 “약가 인하 처분 취소를 구하는 본안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정교한 약가 설계 필요”
정부의 약가 정책은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이 있다. 약가를 높이면 건보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약가 인하는 신약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해도 수익성이 저하된다는 이유로 국내 시장을 외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교한 약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국내 제약 시장은 세계의 2% 수준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국내 가격을 참고해 해외 약가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약가가 낮다는 이유로 제품을 들여오지 않으려는 ‘코리안 패싱’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홍석철 서울대 건강금융연구센터장(경제학부 교수)은 “기존 위험 분담제를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신약 급여를 책정한 뒤 별다른 효과가 없으면 제약사에서 그만큼 환급할 수 있도록 조건을 붙일 수 있다”고 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위험 분담제를 활용하면 국내 환자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홍 센터장은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대신 약가 협상 과정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높은 신약에 대해 약가를 잘 책정한다면, 효과가 좋은 신약이 국내에 들어오고 환자 건강에도 도움 되는 윈윈이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