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인력 수급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40년 기준 의사 인력이 최소 5015명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의료계는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오히려 1만명 이상 의사가 과잉 공급될 수 있다는 정반대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관건은 미래를 어떤 계산법으로 그렸느냐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은 13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정부 의사인력수급추계의 문제점과 대안’ 공동기획 세미나에서 “의대 정원 숫자를 늘리기 전에, 추계 구조부터 다시 짜야 한다”며 대안적 인력 추계 모델을 제시했다.
◇‘면허 수’ 대신 ‘노동량’…FTE로 다시 본 의사 수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제시한 핵심은 의사의 실제 노동량을 반영하는 FTE(Full-Time Equivalent) 기준 추계다. 의사를 ‘몇 명’이 아니라 ‘얼마나 일하느냐’로 보자는 것이다.
의협은 의사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2302.6시간으로 설정했다. 이를 주 40시간 기준 연 2080시간을 1FTE로 환산해 활동 의사 수를 다시 계산했다. 그 결과 FTE 기준 활동 의사 수는 2035년 15만4601명, 2040년에는 16만4959명으로 추정됐다.
의료수요 역시 같은 기준으로 맞췄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의료이용량이 많아 전체 수요를 부풀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건강보험 의료이용량에 집중했다. 입원과 외래의 업무 가중치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사용한 3.9대 1 비율을 그대로 적용했고, 미래 의료환경 변화와 보건의료 정책 변화를 모두 반영한 복합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그 결과 FTE 기준 필요 의사 수는 2035년 14만2844명, 2040년 15만275명으로 나타났다. 복합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필요 인원은 각각 14만634명, 14만6992명으로 더 줄어든다.
종합하면 2035년에는 최소 1만1757명에서 최대 1만3967명, 2040년에는 최소 1만4684명에서 최대 1만7967명의 의사가 과잉 공급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같은 미래, 다른 계산…어디서 갈렸나
의협의 대안 추계는 정부와 추계위의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의료계는 이 격차가 추계 전반에 깔린 가정과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입원과 외래의 업무량 산정 방식이다. 추계위는 자료 확보의 한계를 이유로 입원 진료비와 외래 진료비 비율(3.9대 1)을 업무 가중치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박정훈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진료비를 기준으로 업무량을 계산하면, 입원 과정에서 이뤄지는 수술이나 처치에 포함된 고가 검사비와 장비비까지 의사의 노동으로 계산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의료수요 추계에 활용된 ARIMA 모형 역시 도마에 올랐다. 이 모형은 과거 의료이용량의 시계열적 흐름을 바탕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는데, 구조상 의료이용량이 끝없이 늘어나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성별·연령별 보정은 이뤄졌지만, ‘국민 1인당 의료이용량’이 아니라 ‘전체 의료이용량’을 기준으로 삼아 이미 시작된 인구 자연감소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추계위 자료에서는 60~64세 남성의 1인당 입원일수가 2024년 5일에서 2050년 9일로, 외래일수는 16일에서 34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 사용 기간도 문제로 꼽혔다. 장기간 의료이용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할수록 증가 기울기가 과도하게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종별 입원일수 증가율은 2004~2010년 연평균 11.8%였지만, 2010~2023년에는 1.9%로 크게 둔화됐다.
추계위 시나리오에 포함된 ‘미래 의료환경 변화’ 가정 역시 화두가 됐다. 추계위는 AI 도입으로 의사 생산성이 6% 향상되는 동시에 근무일수가 5% 감소한다고 가정했다. 박 연구원은 “근무일수 감소는 정부가 강제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라며 “생산성 향상 시나리오와 섞어 동시에 적용하는 것은 개념적으로 비과학적”이라고 했다.
◇“결론 서두르기보다, 계산부터 다시”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결론에 이르는 속도부터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연구원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마이크로 수준의 자료원을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의사 인력을 추계해야 한다”며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사의 실제 노동량(FTE)과 생산성 변화가 반영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FTE 관련 자료 구축에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단기적 대안으로는 상대가치점수에 포함된 행위별 의사업무량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추계 방법론 자체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연구원은 “미국과 네덜란드 등 의사 수급을 정기적으로 추계하는 국가들은 ARIMA 모형이 아니라 마이크로 시뮬레이션 모델을 활용한다”며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 FTE 단위로 수요와 공급을 추정하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실에서 발생 가능한 정책 변화와 의료환경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단일한 가정을 적용하면, 또 다른 왜곡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의사 수 논쟁은 결국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