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산모의 시험관 시술(IVF) 성공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나왔다. 나이가 들며 결함이 생긴 난자에 특정 단백질을 주입해 문제를 줄이는 방식이다.
독일 괴팅겐에 있는 ‘막스플랑크 다학제과학연구소’의 멜리나 슈 박사팀 연구다. 슈 박사는 독일·영국 바이오 기업 오보랩스 ‘오보 랩스(Ovo Labs)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슈 박사팀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영국 생식학회(British Fertility Conference)’에서 고령 여성 난자의 생식 능력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같은 날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공개됐다.
◇여성 가임력, 나이 들수록 떨어지는 까닭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가임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영국 NHS 통계에 따르면, 35세 미만 여성이 시험관 시술을 통해 배아를 이식했을 때 성공률은 약 35% 정도다. 43~44세 여성의 경우엔 성공률은 5%로 급락한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고령 산모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처음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는 여성의 평균 나이는 이미 35세를 넘은 지 오래다.
고령 산모의 시험관 시술 성공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난자의 나이다. 남성은 평생 정자를 계속 새로 만들어내는 반면, 여성은 태어나면서 평생 사용할 난자 원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태아 시기의 여아의 난소엔 약 700만개의 난자 전구세포가 있지만, 출생 시엔 약 100만개만 남는다.
살아남은 세포들은 수십 년 동안 ‘휴면 상태’로 있다가, 배란 시점에 깨어난다. 문제는 나이 든 난자일수록 너무 오래 휴면 상태에 있다 보니, 난자가 성숙하는 마지막 단계인 감수분열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감수분열이란 난자가 정자와 결합할 때 염색체 쌍이 갈라지면서 자신의 유전정보의 절반만 남기는 과정을 뜻한다. 난자 안에는 X자 모양의 염색체 23쌍이 있는데, 수정 후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면서 어머니 쪽 염색체 23개가 만들어진다. 이때 나이가 든 난자일수록 이 과정에서 분열이 비대칭으로 진행돼 염색체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배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불임이나 시험관 시술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접착제 단백질’로 난자 고친다
연구팀은 이른바 ‘접착제 단백질’에 주목했다. ‘슈고신(shugoshin1)’이라는 단백질이다. 일본어로 ‘수호령’이라는 뜻이다.
이 단백질은 감수분열 과정에서 염색체 쌍이 너무 빨리 풀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슈고신 단백질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염색체 결합이 훨씬 취약해지고, 염색체가 쉽게 흩어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에 생쥐와 인간 난자에 슈고신 단백질을 미세 주입했다. 그 결과 염색체가 조기에 분리되는 문제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기증받은 인간 난자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슈고신 단백질을 주입하지 않은 난자의 경우엔 염색체 결함 비율이 53%였지만, 단백질을 주입한 난자의 경우엔 염색체 결함 비율이 29%로 줄어들었다. 35세 이상 여성의 난자만 따로 봤을 때도, 대조군의 염색체 결함 비율은 65%, 단백질 주입군은 44%였다.
현재 난자에 미세 주입을 하는 치료법은 ICSI(세포질 내 정자 주입) 외에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안전성 문제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규제 당국과 임상시험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를 검토한 에든버러대의 귀네시 테일러 교수는 “정말 유망한 결과”라면서 “대부분의 여성이 IVF를 시작할 때 이미 난자가 노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기술이 나온 것은 대단히 의미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