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사는 6살짜리 보더콜리 ‘미소(Miso)’는 장난감 200여 개의 이름을 구분할 줄 안다. ‘골판지 곰 인형’ ‘오징어’ 같은 장난감의 이름을 주인에게 듣고 나면, 여러 장난감 중에서도 해당 장난감을 찾아서 곧바로 가져올 수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또 다른 7살 보더콜리 ‘바스켓(Basket)’도 남다른 언어 능력을 자랑한다. 바스켓은 ‘개구리’ ‘크레용 박스’ ‘팝 타르트’ 같은 150여 개의 장난감 이름을 알고 있다. 주인이 이름을 말하면, 그 장난감을 정확히 가져온다. 바스켓을 키우는 엘 바움가르텔-오스틴씨는 “어린 강아지였을 때부터 바스켓은 유독 장난감 이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익혔다”고 했다.
이처럼 똑똑한 반려견에겐 18개월 영아 수준의 언어 학습 능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이 말을 배우는 방식과 유사하게, 이 반려견들은 주인의 대화를 ‘엿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단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ELTE)·오스트리아 빈 수의과대학(VetMedUniVienna) 샤니 드로르 박사팀이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18개월 아기처럼… 반려견의 놀라운 ‘엿듣기’ 학습 능력
개들은 워낙 눈치가 빠르고, “앉아” “엎드려” “손” 같은 명령어를 듣고 동작을 익히는 데 능하다. 다만 장난감 이름 같은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능력은 일부 소수의 총명한 개에게만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연구팀은 이렇게 유독 언어 능력이 탁월한 개 10마리(보더콜리 7마리, 래브라도 1마리, 오스트레일리안 셰퍼드 계열 2마리)를 선별해 언어 습득 방식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들을 ‘재능 있는 단어 학습견(Gifted Word Learner·GWL)’이라고 불렀다.
실험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첫 번째 실험에선 주인이 개에게 직접 말을 걸며 새 장난감 두 개를 보여주고 이름을 반복해 들려줬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개에게 말을 걸지 않은 채, 주인이 다른 사람과 장난감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을 개가 옆에서 지켜보도록 했다. 각 실험은 약 8분간 진행됐다.
이후 연구진은 개들이 새 단어를 실제로 학습했는지를 확인했다. 가령 새 장난감의 이름이 ‘도넛’이라면, 이를 다른 방에 두고 “도넛을 가져올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10마리 가운데 7마리는 두 실험 조건 모두에서 새로운 장난감 이름을 정확히 익힌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가르친 경우에는 평균 약 80%, 엿들은 경우엔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장난감을 가져왔다. 반면 대조군인 일반 개들은 이런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추가 실험도 진행했다. 엿듣기 조건에서 개에게 장난감을 잠시 보여준 뒤 불투명한 바구니에 넣어 시야에서 완전히 가린 상태에서,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장난감 이름을 불렀다. 물체를 보는 시점과 이름을 듣는 시점을 의도적으로 분리한 것이다. 이때도 개들은 대부분 새로운 단어를 성공적으로 학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개가 이렇진 않다”
연구팀은 “이 개들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고급 인지 능력을 보여준다”면서 “이는 사람 아기도 생후 약 18개월은 되어야 가능한 능력”이라고 했다.
다만 연구팀은 모든 개가 이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런 언어 학습 능력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보통 보더콜리에게 자주 관찰되는데, 이는 과거 양치기 개로서 사람의 말을 민감하게 따르는 개체만 따로 선별해 번식시켜 온 역사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왜 특정 개체만 이런 언어 능력이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추가로 연구한다는 계획이다. 그 배경에 집중력이나 자기 조절 능력 같은 요소가 작용하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