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곳도 없는데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상처가 나아도 신경계가 변해 통증을 과도하게 느끼는 만성 통증 환자들이다.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겪는다는 만성 통증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됐다. 상용화되면 부작용이 심한 마약성 진통제 없이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레고리 코더(Gregory Corder)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정신과 교수 연구진은 “마약성 진통제 치료의 중독 위험을 제거하면서 뇌의 통증 중추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유전자 치료법의 효능을 동물 실험에서 확인했다”고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와 간호대, 카네기멜런대,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참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만성 통증은 미국에서 약 5000만명에게 영향을 미쳐 직접적인 의료비와 소득 감소 같은 간접 비용을 합쳐 연간 6억3500만달러(약 9244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힌다.치료법이 나오면 이런 손해를 막을 뿐만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코히어런트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만성 통증 시장 규모는 2024년 721억달러(104조7252억원)에서 2031년 1155억1000만달러(167조1512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로 통증 회로 확인, 유전자 치료로 해결
연구진은 먼저 생쥐의 만성 통증 정도를 파악하고 치료 효과를 확인할 방법을 개발했다. 생쥐의 신경을 일부러 손상해 상처가 없어도 만성 통증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면 생쥐의 머리나 꼬리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연구진은 이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영상 정보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만성 통증의 행동 패턴을 파악했다.
연구진은 통증을 감각과 고통으로 구분했다. 다쳐서 아픔을 느끼는 정상 감각은 유지하면서, 문제가 없어도 발생하는 만성 통증 같은 불쾌한 고통만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만성 통증의 불쾌감은 뇌의 전대상피질(ACC)에서 발생한다. 모르핀은 이곳 신경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한다. 바로 뮤-오피오이드 수용체인 모르(MOR)이다.
연구진은 모르와 비슷한 수용체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해가 없는 바이러스에 넣어 전대상피질 신경세포에 전달했다. 치료 유전자는 평소에는 작동하지 않다가 특정 약물이 들어오면 수용체를 만든다. 이런 수용체는 특정 약물 신호에 따라 활성화된다는 뜻의 영문 약자인 디레드(DREADD)로 부른다. 신호 약물을 투여하자 치료 유전자가 디레드 수용체를 만들어,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세포를 억제했다. 생쥐는 만성 통증을 느낄 때 보이던 동작을 하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의 모니크 스미스(Monique Smith)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실험적 통찰력을 임상 현장에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 전략”이라며 “통증을 느끼는 감각 기능은 유지하면서 고통스러운 감정만 선택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중독 위험이 낮은 안전한 치료의 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모르핀 수용체 관여 없어 부작용 우려 차단
만성 통증은 마치 볼륨이 최대로 고정된 라디오를 듣는 것과 같다. 다치면 당연히 통증을 느끼지만 만성 통증 환자는 상처가 나아도 계속 통증을 호소한다. 볼륨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이때 아편과 같은 성분인 모르핀 같은 합성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의 볼륨을 낮춘다.
문제는 마약성 진통제가 더 큰 병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내성이 생겨 복용량을 늘리면 중독되기 쉽고, 약을 끊으면 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금단 현상도 발생한다. 미국에서 2022년 약물 오남용으로 11만명 가까이 사망했는데, 그중 모르핀 같은 합성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자가 76%를 차지했다.
코더 교수는 “진통제 중독과 부작용 위험을 없애면서 통증을 완화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였다”며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이 작용하는 뇌 회로를 표적으로 삼아 만성 통증 치료에 새로운 길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된 치료법은 모르핀이 결합하는 수용체는 건드리지 않아 마약성 진통제 중독이나 부작용 우려가 없다. 대신 비슷한 수용체를 만들 유전자를 전달해 신경세포의 폭주를 막았다. 만성 통증이 사라지고 신호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치료 유전자도 작동을 멈춰 모르핀처럼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치료법과 초음파 자극같이 조직 손상이 없는 뇌 조절 기술이 결합한다면 임상 현장에서 마약 걱정 없는 ‘스마트 진통 치료’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908-w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39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