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양한 국산 의약품이 세계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 진출에 도전한다. 지난해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관문을 뚫은 국산 신약이 없었는데, 올해는 FDA 허가 성과가 나올지 관심을 모은다. 이와 함께 미국 시장에 진입해 있는 기업들은 올해 제품 판매 확대가 각 회사의 재무 성장성을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9일 한국바이오협회 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FDA 의약품 평가연구센터(CDER)가 허가한 신약은 총 46개다. 신물질신약(NME) 34개, 바이오신약(BLA) 12개 등이다. 작년 FDA 신약 허가 목록에 국산 의약품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2024년엔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와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레티보’가 FDA 허가를 받았다.
올해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이 FDA 허가에 도전한다. 케이캡의 FDA 허가와 유럽 진출이 올해 이 회사의 핵심 과제다. 회사에 따르면 케이캡의 미국 파트너사 세벨라는 미국 허가 신청 준비 막바지 단계로 FDA에 신약허가신청(NDA)을 제출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NDA 제출이 임박했다”며 “FDA 신약 허가 신청 준비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HK이노엔이 개발한 케이캡은 1세대 역류 질환 치료제인 PPI 제제의 단점을 개선해 강점이 있는 2세대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제제 치료제다. P-CAB 제제는 위벽 세포에서 위산 분비 통로인 ‘프로톤 펌프’를 막아 위산의 과다 분비를 막는다. PPI와 다르게 P-CAB 성분은 스스로 활성화돼 식사와 상관없이 복용할 수 있다. 위산 노출에도 쉽게 분해되지 않을 정도로 생존력이 강해 긴 약효가 오래 지속된다.
국내엔 2019년 출시돼, 국내 소화성궤양용제(위장약) 시장에서 원외 처방액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 말레이시아, 페루, 칠레 등 총 18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회사는 위식도 역류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케이캡의 유효성을 평가한 미국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보했다. 미란성 식도염·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 임상 모두에서 1차, 2차 평가지표를 충족했다. 역류성 식도염은 미란성과 비미란성으로 구분되는데, 미란(Erosion)은 위점막이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HLB그룹도 올해 간암 치료제 ‘툴베지오’로 FDA 신약 허가 재신청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HLB의 리보세라닙과 항서제약의 면역관문 억제제인 캄렐리주맙을 간암 1차 치료제 병용요법이다.
작년 HLB는 FDA 허가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허가 반려 사유는 리보세라닙의 효능·안전성이 아닌 캄렐리주맙의 생산 공정과 시설 문제였다. FDA는 제조·품질 관리(CMC) 관련해 보완을 요구했다. 회사는 지적 사항들을 보완해 다시 FDA 품목 허가에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HLB그룹은 지난해 진양곤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을 바이오 부문 총괄 회장으로 영입했다. 이는 허가·상업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 규제 당국의 제조 승인과 품질 시스템 구축을 총괄했다.
먼저 FDA 허가 관문을 뚫은 기업들은 상업적 성공, 시장 점유율 확대가 주요 과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유한양행, GC녹십자, SK바이오팜, 휴젤 등이 대표적이다.
GC녹십자의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는 2023년 12월 FDA 허가를 받아 2024년 하반기에 미국에 출시됐다. 출시 첫 해 매출액은 3600만달러(약 521억원)였다. 작년 연간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알리글로 연 매출이 연초 제시됐던 전망치(가이던스) 1억달러(약 1446억원)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회사는 ’2028년 알리글로 연 매출 3억달러 달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알리글로는 선천성 면역결핍증에 주로 쓰이는 정맥투여용 혈액제제 의약품으로, 국산 혈액제제 최초로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혈액제제는 혈장에 포함된 다양한 단백질을 성분별로 분리·정제해 만드는 의약품으로,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녹십자는 혈장 원료 확보와 미국 내 유통망 확대로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에 자회사 ABO홀딩스가 지난해 3분기 미국 텍사스에 혈액원을 열었고, 회사는 올해 하반기에도 추가로 개소할 예정이다. 2027년 미국 내 8개의 혈액원이 정상 운영되면, 알리글로 제조에 필요한 혈장의 80%를 자체 조달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를 통해 원가율 개선을 꾀하려는 것이다.
유한양행의 항암제 렉라자(미국 제품명 라즈클루즈(LAZCLUZE)는 2024년 8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항암제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으로 폐암 치료제 허가를 받아 미국 시장에 출시됐다. J&J가 공개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합산 1~3분기 누적 글로벌 매출은 4억2800만달러(약 6197억원)다. 지난달 FDA가 투여 펀의성을 개선한 리브리반트 피하주사(SC) 제형을 허가해, 렉라자·리브라반트 병용요법의 매출 확대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휴젤은 2024년 3월 보툴리눔톡신 ‘레티보(Letybo, 국내 제품명 보툴렉스)’에 대한 FDA 품목허가를 받았다. 회사는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비중인 큰 미국에서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서부 중심의 매출을 동부지역까지 확대하는 전략으로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 XCOPRI®)로 미국 시장 1위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엑스코프리 미국 누적 매출액은 약 4595억원으로 2024년 연간 매출을 넘어섰다.
증권가에선 작년 엑스코프리 미국 연매출이 약 6800억원 규모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정재원 IM증권 연구원은 “올해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의 미국 내 처방량 증가, 판매 지역 확대에 따른 로열티 수익 증가 등 외형 성장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바이오시밀러 기업들도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해 골다공증 치료제 프롤리아와 엑스지바의 바이오시밀러인 오스포미브(Ospomyv), 엑스브릭((Xbryk)이 미국에서 허가를 받아 미국 FDA 허가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10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피즈치바(Pruxizva), 희귀질환 치료제 에피스클리(Epysqli), 안과질환 치료제 바이우비즈(Byuvez)·오퓨비즈(Ofuviz) 등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10종, 바이오 신약 1종 등 11개 제품에 대해 FDA 품목 허가를 받았다. 셀트리온 미국 법인은 올해 상반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앱토즈마 피하주사(SC) 제형을 출시할 예정이다. 회사는 작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앱토즈마와 스테키마, 골다공증 치료제 스토보클로-오센벨트 등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법인이 앱토즈마의 주요 적응증인 류마티스 관절염 분야에서 처방 확대를 이끌기 위한 전문 인력 확충을 마친 상황”이라며 “한층 강화된 영업 경쟁력, 마케팅 역량을 앞세워 시장 선점을 빠르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