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무늬도마뱀(side-splotched lizard)’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다. 봄이 되면 수컷의 목둘레 빛깔이 개체별로 화려하게 달라진다. 같은 종(種)인데도 어떤 것은 파란빛, 어떤 것은 주홍빛, 또다른 것은 노란빛을 띤다.
옆무늬도마뱀의 수컷이 이처럼 각기 다른 빛깔로 몸을 바꾸는 건, 이들이 각기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고, 여기에 맞춰 제각각 다른 짝짓기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아몬 콜 교수팀이 옆무늬도마뱀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 결과는 지난 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됐다.
◇짝짓기 할 때 ‘가위바위보’ 전략을 쓰는 도마뱀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짝짓기에 돌입한 옆무늬도마뱀 수컷이 ‘주황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목둘레 빛깔을 바꾸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대 진화생물학과 베리 시너보 교수팀은 처음으로 주황색 수컷은 짝짓기 경쟁에서 파란색 수컷을 이기고, 파란색 수컷은 노란색 수컷을 이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재미있게도 노란색 수컷은 파란색과의 경쟁에선 지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주황색 수컷과의 경쟁에선 이겼다. 시너보 교수는 이것이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다고 봤다. 주황색이 ‘바위’, 파란색이 ‘가위’, 노란색이 ‘보’다.
주황색 수컷은 공격력으로 다른 개체를 이기는 경우다. 힘으로 다른 도마뱀을 제압한다. 가위바위보의 ‘바위’와도 같다. 반면 파란색 수컷은 다른 수컷을 철저하게 감시해서 차단한다. 암컷 주위에 다른 수컷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노란색 수컷은 보통 이 과정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노란색 수컷에게도 비밀 병기는 있다. ‘변장’이다. 노란색 수컷은 암컷인 척 위장해서 짝짓기를 한다. 보통 주황색 수컷 구역에 슬쩍 들어가 짝짓기에 성공한다. ‘바위’를 ‘보’가 이기는 것이다.
이들의 ‘가위바위보’ 경쟁 덕분에 해마다 옆무늬도마뱀 수컷의 수도 종류별로 달라진다. 어떤 해엔 주황색 수컷이 많고, 이듬해엔 파란색 수컷이 많다. 또 다른 해엔 노란색 수컷이 늘어났다가 다시 주황색 수컷 수가 우세해지는 식이다.
◇13년 만에 밝혀진 유전자의 비밀
아몬 콜 교수팀은 여기에 더해 최근 새로운 사실을 더 알아냈다. 고해상도 유전체 분석 기술을 동원해 옆무늬도마뱀의 지놈(유전체)을 분석, 이 도마뱀의 빛깔과 행동이 각기 다른 건 유전자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가령 주황색 수컷과 파란색 수컷은 유전자 분석 결과 딱 한 부분이 달랐다. 특히 ‘SPR’이라는 단백질 수치가 낮으면 주황색, 높으면 파란색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유전자가 빛깔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성격까지 조절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란색 수컷은 유전적으로는 파란색 수컷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옆무늬도마뱀이 상황에 따라 ‘노란색’ 또는 ‘파란색’으로 변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보통 자기만의 영토를 차지하지 못한 옆무늬도마뱀 수컷일수록 짝짓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란색 위장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생태계 유지의 놀라운 법칙
연구팀은 이를 두고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라고 했다. 자연은 ‘가장 센 놈’만 남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으면서 유지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 종만 너무 강하면 결국 다른 종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이 도마뱀들처럼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면 어느 한쪽도 멸종하지 않고 모두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