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을 살짝 찔러 나온 피 몇 방울만으로 알츠하이머, 파킨슨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이라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 관련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채취한 혈액 샘플을 보관·운송하는 것이 쉽진 않다는 것. 병원에서 채혈한 뒤에도 냉장 보관 및 운송이 필수였다.
최근 스웨덴 연구진이 채취한 혈액을 건조한 샘플로도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징후를 뇌척수액 검사에 버금가는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니컬러스 J 애슈턴 박사팀은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기술이 고도화되면, 나중엔 의료진 없이 환자 본인이 직접 채혈할 수도 있고, 재택·원격 검사로 알츠하이머 병리를 선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손끝 혈액 ‘말려서’ 치매 진단
그동안 혈액 속 바이오마커를 측정할 땐 검체 처리와 보관이 쉽지 않았다. 기존 방식은 정맥 혈액을 뽑아 즉시 처리·냉장·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적용이 어렵고 접근성에도 한계가 있었다.
애슈턴 박사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건조 혈액 샘플’을 만들었다. 손가락 끝에서 소량의 혈액을 채취한 뒤 종이 카드에 떨어뜨려 말린 다음, 이것을 분석하는 검출법이다.
유럽 7개 연구기관을 통해 모집한 실험 참가자 337명의 손끝 혈액을 채취·건조해 샘플을 만들었다. 이들은 또한 정확도 비교를 위해 정맥 채혈도 했고, 뇌척수액(CSF) 검사도 따로 받았다.
연구팀은 이 337명 검체를 활용해 이들에게서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각종 뇌 변화와 연관된 단백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손가락에서 채취한 혈액의 타우 단백질(p-tau217) 수치는 표준 혈액 검사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특히 건조 혈액 샘플 분석 결과는 뇌척수액 검사 결과와 약 86%의 일치율을 보였다. 건조 혈액 샘플 측정법의 정확도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상용화도 ‘성큼’
특히 실험 참가자들은 별도의 안내 없이도 스스로 채혈하고 직접 건조 혈액 샘플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방식이 고도화되면 앞으로 의료진이 부족하거나 검체 운송이 어려운 지역에서도 환자를 원격으로 검사할 수 있게 된다. 대규모 연구도 머지않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 기법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미 FDA는 지난 5월 알츠하이머 유발 단백질을 혈액으로 분석하는 ‘루미펄스(Lumipulse)’ 검사를 승인했으며, 현재 공식 의료 기기 승인 절차도 밟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이 기법을 도입하는 의료 기관도 늘고 있다. 미국의 ‘메이요클리닉랩스’ 등 이미 혈액 바이오마커 기법을 동원해 알츠하이머 등을 진단하고 있다. 퀀터릭스(Quanterix), 베크먼쿨터(Beckman Coulter) 등 글로벌 기업들도 타우 단백질 수치 측정 키트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물론 한계는 있다. 혈액 바이오마커 측정법은 아직 확진 진단이 아닌 보조·선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한 무증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검진에 적용할 경우 윤리적·의학적 논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액 기반 진단 시장은 꾸준한 성장이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혈액 진단 기기 시장은 2035년까지 약 44억달러(약 6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