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아이들에게 로봇이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다니엘 다비드 루마니아 바베슈-보요이 대학 총장 겸 임상 심리학 교수, 폴 벡스터 영국 링컨 대학 교수, 톰 지엠케 스웨덴 린셰핑 대학 교수 등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로, 지난 12월 24일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소개됐다. 연구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아동들은 기존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 로봇과 수업할 때 더 높은 참여도를 보였고, 치료 효과도 그만큼 더 좋았다고 한다.
◇자폐 어린이 사로잡는 ‘로봇 선생님’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지속적인 결함을 보이는 발달 장애다. 보통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상대방 행동을 따라 하는 것, 대화를 길게 주고받는 것을 어려워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지난 2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친근하게 생긴 로봇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 치료를 도와주면 어떨까?’를 고민해 왔다. 자폐 아동에게 사람의 표정이나 말의 뉘앙스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해서 읽어내기 쉽지 않지만, 로봇은 항상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은 속도로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자폐 치료에선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한데, 로봇은 사람과 달리 1000번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고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보다 효과적인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이에 두 차례 ‘리얼월드’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은 루마니아 바베슈-보요이 대학 산하의 ‘임상심리학 및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진행됐다. 평균 나이 4.4세의 아이들 69명을 모아 매주 2번씩 총 12번의 치료를 로봇과 진행한 것이다.
이때 사용한 로봇은 프랑스 로봇 기업인 ‘알데바란 로보틱스’가 개발한 ‘나오(NAO)’다. 나오 로봇은 작고 귀여운 외모 덕분에 특히 어린이 대상 심리 치료 연구에 널리 쓰인다. 눈을 맞추고, 아이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거나, 말을 주고받는 고난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이 로봇을 통해 아이들이 ‘나를 따라 해봐요’ 같은 동작 모방 게임, 로봇이 “저기 봐!” 하고 특정 물체를 쳐다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같이 물체를 쳐다보는지 확인하는 게임, 로봇과 아이가 번갈아 가며 버튼을 누르거나, 블록을 쌓으면서 ‘차례’를 기다리고 배우는 게임을 하도록 했다. 모두 사회성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규칙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게임이다.
◇저렴한 로봇도 효과 좋았다
두 번째 임상 시험은 연구소가 아닌 아이들 집과 학교에서 진행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 63명(평균 나이 5.3세)이 실제 사는 집과, 아이들 학교를 오가며 5회 수업을 했다.
이때 로봇은 첫 번째 시험에 쓰였던 ‘나오’보다 훨씬 저렴한 버전의 ‘큐티로봇(QTrobot)‘을 사용했다. 나오처럼 온몸을 정교하게 움직이진 않지만, 태블릿 화면이 얼굴에 달려 다양한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성비 로봇’이다.
연구팀은 두 번의 시험을 거치면서, 이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은 선생님과 학습할 때보다 로봇과 게임을 할 때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로봇과 수업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적 규칙을 익히고 지킬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연구팀은 “로봇 특유의 단순하고 일관된 행동에 자폐 아동들이 한결 스트레스를 적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병원이나 실험실, 연구실을 떠나 집이나 학교에서도 이 같은 로봇 치료가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꼭 값비싼 로봇이 아니어도 치료 효과가 좋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