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첨단3지구 국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내부 전경.(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뉴스1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에 확산하면서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이제 승부는 눈에 보이는 완제품보다 그 뒤에서 전력을 공급하고 데이터를 보내며 안전과 신뢰를 담보하는 기반 기술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1일(현지시각) 기술 전문지 IEEE 스펙트럼은 올해 주목해야 할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전기·전자·정보통신 등 공학 전반의 세계 최대 규모 전문가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전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 중 하나는 탄소와 에너지다. 특히 이탈리아 밀라노 기반의 에너지돔(Energy Dome)이 개발한 ‘버블 배터리’가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전력 저장을 말하면 대개 리튬이온 배터리를 떠올리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는 원재료 수급과 비용, 설치 공간, 화재 위험 같은 문제가 따라붙는다. 에너지돔이 제시한 방식은 순수 이산화탄소를 거대한 돔 형태의 구조물 안에 압축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압력을 풀며 생기는 힘(압력 차)으로 발전 장치를 돌려 전기를 다시 만들어 낸다. 회사가 목표로 제시한 저장 용량은 최대 200MWh(메가와트시) 규모다.

이 저장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있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연산량이 크고,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며 순간적으로 전력 수요가 튀는 구간도 잦다. 그래서 발전소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만큼, 가까운 곳에 저장·조절 장치를 둬 전력 피크를 눌러주는 게 점점 중요하다는 것이다.

IEEE 스펙트럼은 “이산화탄소 버블 배터리가 전력망에 붙어 전기가 남을 때는 담고, 필요할 때는 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두 흐름을 동시에 뒷받침할 수 있다”고 했다.

데이터센터의 또 다른 병목인 연결 기술 경쟁도 달아오를 전망이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프로세서 사이를 오가는 데이터는 폭증한다. 이때 내부 연결, 즉 인터커넥트가 막히면 연산 장치가 아무리 좋아도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구리 케이블이나 광섬유 대신 전파로 데이터를 보내는 ‘라디오 기반 케이블’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 방식은 데이터센터 내부에서 10~20m 떨어진 장치들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복잡한 배선이 줄면 공기 흐름이 개선돼 냉각 설계 부담을 덜 수 있다.

업계의 목표는 광섬유 대비 전력 소모와 비용을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는 GPU에 전파를 더 가까이 붙이거나 아예 통합해, 데이터 센터의 발열과 냉각 부담을 줄이고 AI 연산 규모의 확대를 지원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히스토소닉스(HistoSonics)의 집속 초음파 치료가 소개됐다. 집중 초음파로 공동 기포를 만들어 종양을 파괴하되 주변 조직을 위험하게 가열하지 않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칼을 대지 않고 초음파로 종양 속에 아주 작은 거품을 만들고 터뜨려, 암 덩어리를 부수는 치료다. 생존율이 낮고 진행이 빠르다고 알려진 췌장암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시작됐고, 신장 관련 임상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재난 대응의 기술은 더 빠른 초기 대응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물류 현장에서 성과를 보인 드론은 배송을 넘어 산불 분야로 확장될 전망이다. 핵심은 불이 번지기 전에 탐지-판단-진화를 한 사이클로 묶어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열화상 카메라나 센서로 연기·온도를 감지해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AI가 위치·확산 방향을 계산해 위험도를 분류한 뒤, 드론이나 무인 장비가 초기 진화 물질을 투하하는 형태다. 관련 스타트업들은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고,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밖에 올해 주목해야 할 기술로 포르쉐의 전기차용 무선 가정용 충전기, 세계 최초의 전기 에어택시 서비스, 중성 원자 양자 컴퓨터, 상호 운용 가능한 메시 네트워크, 로봇 야구 심판 등이 선정됐다.

IEEE 스펙트럼은 “빅테크의 인물보다 기술 그 자체를 따라, 대중 매체가 놓치기 쉬운 숨은 프로젝트들을 찾아냈다”며 “올해의 선택들 가운데 과연 어떤 기술이 현실화될지 지켜보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