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메디톡스 사옥(왼쪽)과 대웅제약 사옥. /뉴스1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소송 2심에 참여하는 변호사가 5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회사는 보툴리눔 톡신 원료가 되는 균주(菌株)와 생산 공정을 놓고 8년간 다투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균(菌)에서 독성 단백질을 추출한 것이다. 피부에 주입하면 근육이 마비돼 잔주름이 일시적으로 펴진다. 제약업계는 “매머드급 변호사 규모”라면서 “K팝, K드라마로 해외에서 K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보톡스 소송에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나온다.

30일 제약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5-3부는 지난 18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영업 비밀 침해 금지 청구 소송 변론 기일을 열었다. 이 사건 항소심은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6차례 변론 준비 기일과 5차례 변론 기일을 진행했다. 준비 기일은 본격적인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향후 재판 진행 과정을 조율하는 절차다. 내년 2월 말에도 재판이 예정됐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메디톡신(2006년 출시)과 나보타(2014년)를 보유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이 사건에서 대웅제약이 자사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공정을 반출했다고 주장한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을 독자 개발했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스 제조 공정 기술은 수십년 전 논문에서 공개돼 영업 비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민사 소송은 20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심은 6년 만에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는 2023년 2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에 4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대웅제약)가 원고(메디톡스)의 영업 비밀 정보를 취득해 개발 기간을 단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고와 피고 균주가 서로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대웅제약이 항소하며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다.

2심에 참여하는 변호인은 총 51명이다. 메디톡스 측은 법무법인 화우, 원 등을 포함해 24명이다. 대웅제약 측은 태평양, 바른, 율촌 등 27명이다. 앞서 1심 변호인 37명(메디톡스 측 25명·대웅제약 측 12명)보다 14명이 늘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1심과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대웅제약은 1심이 오판(誤判)했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보톡스 분쟁이 있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서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 금지한다는 결론을 2020년 12월 발표했다. 그러나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와 합의하며 ITC 분쟁은 일단락됐다.

대웅제약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왼쪽부터)와 메디톡스 보툴리눔 톡신 메디톡신.

보톡스의 역사는 1970년대 시작됐다. 당시 미국 안과 의사 앨런 스콧 박사는 안구 근육 긴장으로 발생하는 사시를 치료하기 위해 보톡스를 사용했다. 보톡스는 1980년대 눈꺼풀 경련, 소아 뇌성 마비 환자 치료제로 쓰였다. 국내에선 1995년 사시와 눈꺼풀 경련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청 승인을 받았다. 소아 뇌성 마비(1999년), 미간 주름과 다한증·뇌졸중 관련 근육 경직 치료제(2008년)로 허가를 받았다.

보톡스는 해외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조 바이든 미국 전 대통령은 2000년대 후반 이마에 검은 반점이 생겨 외신이 보톡스 부작용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 측은 이 사실을 부인했고 검은 반점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2007년 보톡스를 맞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고 이후 이를 부인했다.

보톡스는 제약사에서 매출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1조352억원이다. 이 가운데 나보타 매출이 1710억원으로 전체의 17% 수준이다. 메디톡스는 3분기 메디톡신 등 보톡스와 필러 누적 매출이 1631억원이다. 전체 매출의 87%를 차지한다.

보톡스는 주름을 펴고 사각턱을 개선하는 용도 등으로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층까지 수요가 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K보톡스가 중남미, 중동 등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했다”면서 “매출 효자인 보톡스를 둘러싼 소송 결과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