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국제약품의 경영 승계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국제약품은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남태훈(45) 대표이사를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남 대표는 국제약품의 창업주 고(故) 남상옥 회장의 손자이자 남영우(83)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남 대표의 부회장 승진은 국제약품이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지 약 두 달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에 업계에선 사실상 지분 승계만 남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3세 경영 체제를 본격화한 국제약품이 중견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지배구조 재편 작업…지분 승계 퍼즐 남아
현재 국제약품의 사업 규모는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한국 정·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했다. 1935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창업주 남상옥 회장은 1959년 국제약품을 설립했다. 그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서울상공회의소(서울상의) 회장으로 선출됐고, 1968년엔 서울 장충동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매입했다. 1982년엔 당시 김종호 세창물산 회장, 단사천 한국제지 회장 등과 신한투자금융(현 신한투자증권)을 설립했다.
남상옥 초대회장이 1984년 12월 별세한 이후 장남 남영우 명예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아 40년 가까이 국제약품을 이끌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말, 남 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장남 남태훈 대표의 단독 대표 체제가 됐고, 이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남 부회장은 1980년생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 보스턴 캠퍼스 경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국제약품에 입사한 뒤 여러 부서를 거쳐 2013년 판매총괄 부사장, 2017년 대표이사 사장 등으로 고속 승진을 해왔다.
현재 남 부회장의 국제약품 지분율은 2.12%에 그친다.
국제약품은 2017년 신설된 지주회사 (주)우경을 통해 창업자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구조다. 우경은 2017년 12월 국제약품의 최대 주주였던 효림산업(현 효림이엔아이)의 투자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하는 방식으로 설립된 지주회사다. 지난 9월 말 기준 우경의 국제약품 지분율은 23.96%, 남 명예회장의 지분율은 8.58%다. 남 명예회장은 우경의 지분 85.4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너 일가가 지분 승계를 염두에 두고 지주사를 설립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경을 지분 승계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상장사 지분을 직접 증여하는 것보다 비상장 지주사 지분을 이전하는 방식이 세금 부담과 시장 영향,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제약품은 지난 22일 일동홀딩스와 각 사가 보유한 3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장외에서 맞교환(스와프)했다. 이를 통해 일동홀딩스는 국제약품 지분 3.77%, 국제약품은 일동홀딩스 지분 2.15%를 확보했다.
두 회사는 “영업 유통망 상호 공유, 신약 공동 개발 추진 같은 시너지를 내기 위한 연대 강화 목적의 재무 전략”이라고 밝혔는데, 시장에선 상법개정안 대비책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사주 처분 시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3차 상법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안팎에선 내년 1월 통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는 회사가 들고 있을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법안 통과 전 우호 세력과 주식을 교환하면 의결권이 살아나 이를 우회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안과 사업 확장으로 성장 궤도…3세 경영 시험대
오너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한 국제약품의 주요 과제는 개량신약 확대와 사업 성장이다.
내년 정부가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가격에 적용하는 산정률을 낮출 예정이다. 이로 인해 복제약 중심의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수익성 악화 위기에 처했다. 국제약품 역시 전체 매출의 85% 이상이 제네릭약에서 나오는 구조다.
국제약품은 지난해 처음 연 매출 15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1~3분기 연결 기준 누적 매출액은 약 1322억원으로 전년보다 15.1%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2% 늘어 77억원, 순이익은 약 43% 증가한 6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과 2023년에는 영업손실을 봤는데, 적자 사업을 정리하고 안과 의약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서 실적 부진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큐알론점안액(제네릭)’, ‘레바아이점안액(개량신약)’ 등 안과 전문의약품과 제네릭 항생제가 회사의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올해 상반기 회사의 점안제 생산 실적은 7428만개로, 점안제 생산시설인 안산공장 전체 가동률은 97.8%에 달했다.
회사는 중장기 성장 동력도 안과 분야로 삼고 있다. 회사의 주요 R&D 파이프라인으로 녹내장 개량신약 ‘TFC-003’이 있다. 올해 임상 3상 IND 변경 승인을 완료했으며, 안구건조증 개량신약 ‘HCS-001’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국제약품은 점안제 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도 추진 중이다. 지난달 안과용 점안제 생산설비 추가 구축을 위해 약 93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해당 투자금은 작년 말 자기자본의 10.6% 규모로, 증설 공사는 2027년 1월 말 완료될 예정이다. 회사는 내부 자금 활용과 함께 외부 자금 조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회사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119억원이다.
국제약품 관계자는 “생산설비 증설 투자는 공급 안정성 확보와 국내외 수탁 매출 확대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앞으로 안과 질환 분야 제품군 확대와 인공지능(AI) 기반 안질환 진단 설루션 융합 전략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