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다이버가 태양 표면을 배경으로 완벽한 실루엣을 그리며 도약한다. 그 뒤로 태양 표면의 흑점이 보인다. 강한 자기장이 표면으로 올라가는 열의 일부를 차단해 다른 곳보다 온도가 낮은 영역이다. 천체사진작가인 앤드루 매카시와 스카이다이버 가브리엘 브라운은 특별히 설계된 태양 망원경을 이용해 이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수개월간 계획을 세웠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5일(현지 시각) ‘2025년 최고의 과학 사진’을 선정해 발표했다. 먼 은하에서 태양과 하늘로 쏟아지는 번개부터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시 세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사진까지,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 사진들이 선정됐다. 이와 함께 동물의 진지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사진들도 올해의 최고 과학 사진으로 꼽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붉은 번개
사진작가들은 지난 10월 뉴질랜드 상공에서 희귀한 ‘붉은 스프라이트’를 포착했다. 스프라이트는 상층 대기인 중간권(中間圈)에서 발생하는 번개이다. 중간권은 지구 대기권의 하나로, 성층권과 열권 사이의 고도 50~80㎞를 말한다. 보통 번개는 수㎞ 상공 뇌우에서 발생하지만, 스프라이트는 그보다 훨씬 높은 80㎞에서 발생한다. 번개가 친 직후 다양한 형태로 붉은 섬광이 나타났다가 기둥과 가지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진작가 톰 레이는 “마치 실체가 없는 것을 보는 듯한, 매우 신비로운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미 국립과학재단(NSF)과 에너지부(DOE)의 베라 C. 루빈 천문대는 첫 관측 사진을 공개했다. 우리은하 중심부가 있는 궁수자리 방향으로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4도 이상 넓이로 담았다. 사진에는 유명한 성운인 메시에 8(라군 성운)과 메시에 20(트리피드 성운)이 있다. 이 합성 사진은 올해부터 칠레에서 가동한 3200메가픽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수백 장의 이미지를 결합한 것이다.
사진작가 프란시스코 네그로니가는 칠레 빌라리카 화산을 정기적으로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용암이 쏟아진 화산 위로 반지처럼 아름답게 원형으로 뭉친 두 구름을 포착했다. AFP 사진작가 마르코 롱가리는 천문학과 생물학의 접점을 찾았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어캣 국립공원에서 퇴역한 KAT-7 전파망원경을 배경으로 작은 버섯이 돋은 모습을 찍었다.
◇문신 새긴 지구 최강의 동물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 절지동물인 물곰은 지구 최강의 동물로 꼽힌다.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고도 남을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고 우주 방사선에 노출돼도 살아남았다. 지난 3월 중국 과학자들은 이 물곰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문신을 새겼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전자빔을 이용해 동물을 덮고 있는 얼음층에 점을 새겼다. 이 빔은 물질을 화합물로 변환시켜 피부 표면에 부착시켰다. 나머지 얼음이 증발하면서 최종 문양이 드러났다. 중국 과학자들은 이 방법이 생체공학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연구진은 같은 방식으로 박테리아를 포함한 더 작은 생물체에도 문신을 새기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화학공학자인 얀 로젠붐(Jan Rosenboom) 박사는 물방울에 떠다니는 좁쌀공말(Volvox) 구체를 촬영한 작품으로 올해 니콘 스몰 월드 현미경 사진전에서 2등 상을 받았다. 녹조류인 좁쌀공말 구체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개별 세포가 모여 형성됐다. 이 모습에서 초기 다세포 생명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엿볼 수 있다.
양갯민숭달팽이(학명 Costasiella kuroshimae)는 동물이지만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조류(藻類)를 먹이로 삼아 엽록체를 몸에 흡수한다. 이 엽록체는 햇빛을 포착해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양이란 이름은 머리 양쪽에 양 귀를 닮은 감각 기관이 있어 붙여졌다. 지안카를로 마자레세는 달팽이가 나선형으로 알을 낳는 모습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올해의 해양 사진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사진작가 제이드 호크스버겐이 촬영한 어린 연산호뿔게(Hoplophrys oatesii)의 사진은 올해의 해양 사진작가 대회의 최종 후보작이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의대의 리 중웨이(Zhongwei Li) 교수 연구진은 지난 9월 “신장의 혈액 여와 소변 농축 기능을 결합한 오가노이드(organoid)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셀 스템 셀’에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는 ‘장기(臟器) 유사체’란 뜻으로,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비슷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이다.
USC 연구진은 줄기세포로 신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특히 한 가지 세포를 입체로 배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세포를 키워 서로 연결했다. 오가노이드 조립체인 이른바 어셈블로이드(assembloid)가 탄생한 것이다. 생쥐에 이식된 오가노이드는 혈액을 여과하고 단백질을 흡수했다.
◇코뿔소 살아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
알고 보면 진지한 일이지만 사진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케냐의 검은코뿔소(Diceros bicornis)는 보존 노력 덕분에 멸종 위기를 극복했으나, 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2025년 빅픽처(BigPicture) 야생동물 사진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 사진은 수의사들이 병든 코뿔소를 치료하고 방사한 순간, 사람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담았다. 워낙 덩치가 큰 동물이라 코뿔소가 진정제를 맞았어도 안전하게 다루려면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자연 사진작가 산딥 구하는 인도 실리구리에서 구애 중인 게거미 한 쌍을 찍었다. 거미는 암컷이 수컷보다 60배 이상 크다. 이 사진은 올해 런던 카메라 익스체인지 올해의 사진작가 공모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컷은 짝짓기 뒤에 암컷의 먹이로 희생될지 모른다. 치명적인 포옹이다.
두 마리 개구리가 다투는 모습은 올해 니콘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에서 수상했다. 수컷 녹색 개구리(Lithobates clamitans)가 영역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담았다. 미국의 13세 사진작가 그레이슨 벨은 이 사진에 ‘강제로 세례를 받는 개종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원치 않는 세례를 강제로 주는 억지 개종 같다는 얘기다. 벨은 이 사진으로 16세 이하에 주는 주니어 부문 상과 파충류·양서류·곤충 부문 상을 동시에 받았다.
그리스 파트라스 인근 먼지 자욱한 언덕에서 한 남성이 양을 안은 채 스쿠터에 타고 내려오고 있다.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 제3의 도시 위쪽 경사면에 산불이 번지는 가운데 양을 구하려는 절실한 심정을 포착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8월 중순 늦은 오후 AP 사진기자 타나시스 스타브라키스가 촬영했다.
나무늘보가 철조망 기둥에 매달린 모습도 마찬가지다. 네이처는 “인공 철조망과 대비되는 나무늘보의 고요한 얼굴과 차분한 태도는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전 세계에서 파괴되는 가운데 자연이 어떻게 생명을 붙잡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https://www.nature.com/immersive/d41586-025-03935-3/index.html
Nano Letters(2025), DOI: https://doi.org/10.1021/acs.nanolett.5c00378
Cell Stem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stem.2025.08.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