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읽고 기계나 컴퓨터를 작동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뇌에 삽입하는 장치를 더 작고, 더 얇게 만들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BCI 상용화 시기가 다가오면서 투자금도 몰리고 있다.
◇더 작게, 더 얇게… BCI 진화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컬럼비아대, 스탠퍼드대, 펜실베이니아대 공동 연구팀은 칩 하나에 전극 6만5000개를 담은 BCI ‘비스크(BISC)’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밝혔다.
이들이 만든 장치는 대단히 얇다. 뇌와 두개골 사이에 종잇장처럼 넣을 수 있을 정도다. 부피도 약 3㎣ 정도로, 기존 BCI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6만개가 넘는 전극으로 뇌 신호를 감지해 컴퓨터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거나 음성을 낼 수 있다. 뇌성마비 환자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우표처럼 생긴 작은 칩 안에 모든 첨단 기술이 집약됐다”면서 “칩이 워낙 작고 얇다 보니 수술 시간도 더 빨라졌다. 뇌를 덜 자극하면서 더 나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비스크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캄프토 뉴로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임상을 서두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미국 BCI 기업 ‘프리시전뉴로사이언스’는 우표 크기의 필름형 칩 ‘레이어7(Layer7)’의 임상 데이터를 발표했고, 지난 4월 미 식품의약국(FDA) 의료기기 시판 승인을 받았다.
수술 없이 BCI 기술을 구현하는 비침습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팀은 사람 두피에 센서를 붙이면, 센서가 뇌파를 측정·해독해 원하는 바를 읽어내는 기술을 공개했다. 중국 칭화대도 두개골을 뚫지 않고 초음파로 뇌의 특정 부위를 정밀하게 자극해 뇌 신호를 활발하게 하고, 신호를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1조원 이상 투자받은 기업도
BCI 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임상 연구 성과가 잇따르자, 상용화를 기대하는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진 영향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비침습적 초음파 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 ‘머지랩스’를 설립했다. 머지랩스는 두개골을 여는 뇌 수술을 지양하고, 초음파로 뇌 세포 신호를 감지해 사람의 생각만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현재 2억5000만달러(약 3600억원)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 유치 중이다.
일론 머스크의 BCI 기업 ‘뉴럴링크’는 2023년 FDA 임상 승인을 받고, 뇌성마비 환자 5명에게 칩을 이식해 증상이 나아진 사례를 공개한 바 있다. 지난 6월에 6억5000만달러(약 9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누적 투자금은 12억달러(약 1조7600억원)에 달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투자한 호주 BCI 스타트업 ‘싱크론’도 지난달 2억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확보했다. 싱크론이 개발한 ‘스텐트로드 BCI’는 두개골을 여는 대신 목의 앞부분에 있는 경정맥을 통해 칩을 삽입할 수 있다. 미국과 호주 등지에 있는 환자 10여 명에게 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지난 8월엔 이식 수술을 받은 루게릭 환자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아이패드를 작동시키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해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