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 회사들이 최근 일부 의약품은 ‘직접 판매’로 팔기 시작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의지해 온 도매상·약국·PBM(약가 중간 관리 업체) 같은 ‘중간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직접 약을 파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만 치료제 인기가 계기가 됐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직접 주문 서비스를 통해 비만 약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비만 치료제 매출도 더 늘었다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약 직접 파는 글로벌 제약사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직접 주문 서비스를 받고 있다. 비만 치료제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이를 온라인 직구매로 사려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온라인 서비스 ‘릴리 다이렉트’를 통해 주문하고 있다”면서 “코스트코에서 사면 1050달러인데, 직접 구매하니 550달러”라고 했다. 이 소비자의 경우엔 메디케어 플랜 보험에 가입했지만, 이 보험이 젭바운드 비용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고 했다. 훨씬 더 가격이 저렴한 온라인 직구매를 택하는 이유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 젭바운드를 처방한 50만건 중 약 30%는 릴리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팔려나간 것이다. ‘릴리 다이렉트’를 통하면 월 299달러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약을 살 수 있다. 일라이 릴리 측은 직접 구매가 늘어난 덕분에 올해 젭바운드 매출이 1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같은 기업들도 당뇨병, 건선, 심혈관 질환 치료제를 온라인에서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화이자와 BMS가 공동으로 판매하는 혈전 방지제 ‘엘리퀴스’도 직접 구매 가능하다. WSJ는 “사람들이 이제 진료부터 처방, 약 구매까지 온라인에서 받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만 이러한 온라인 직접 판매가 반드시 매출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보 노디스크 미국 법인 부사장 데이비드 무어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런 ‘직접 판매 서비스’가 새로운 매출 확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약값을 낮춘 만큼 더 많은 환자에게 많이 팔지 못하면 오히려 수익이 줄어들 위험도 있다”고 했다.
◇중간 유통업자들은 반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선 제약사가 도매상·유통사에 약을 판매하고, 도매상·약국이 환자에게 공급하면, 환자가 가입한 건강보험 회사가 약값의 대부분을 제약사·약국에 지불하는 형태로 약이 유통되어 왔다. 온라인 직접 판매는 미국에선 낯선 방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트럼프알엑스(TrumpRx)’라는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이 약을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앞으로 이 같은 직접 판매 방식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중간 유통 업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PBM 업계 단체인 ‘의약품 관리 협회(Pharmaceutical Care Management Association)’는 성명을 내고 “대부분 환자에게는 본인이 가입한 보험 혜택을 통해 약국과 의사를 거쳐 약을 사는 것이 더 저렴하고,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