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10'으로 선정된 루시아누 모레이라. /네이처

브라질 쿠리치바 지역의 한 공장에는 매주 70L(리터)의 혈액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자라는 모기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대표적 해충으로 알려진 모기를 오히려 먹여 살린다니, 어찌 된 일일까.

이곳은 ‘질병과 싸우는 모기’를 생산하는 브라질의 모기 공장이다. 지난 7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매주 8000만마리가 넘는 모기가 알에서 깨어난다.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는 월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시켜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지 못하게 만든 모기들이다. 이들을 야생에 퍼뜨려 최대한 많은 모기와 교미하도록 한다. 전체 모기 집단을 점차 월바키아 보균 모기로 대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지난해 뎅기열로 6000명 이상이 숨진 브라질에 세계 최대 모기 공장이 생기게 된 데는 루시아누 모레이라 박사의 역할이 컸다. 박사 후 연구원이었던 약 30년 전에 유전자 조작 모기를 처음 접한 그는 월바키아 모기 연구에 몰두했고, 브라질로 귀국한 후에는 실제 효과를 입증하는 데 힘썼다. 예컨대 니테로이 지역은 월바키아 모기를 방사하자 뎅기열 발생률이 89%나 감소했다. 브라질 당국을 설득해 모기 공장 설립을 이끌어낸 그의 목표는 월바키아 모기를 연간 50억마리 생산, 방사하는 것이다.

◇정치적 압력 거부한 ‘공중보건 수호자’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모레이라 박사를 포함해 10명을 ‘2025년의 과학계 인물’(네이처 10)로 지난 9일 선정했다. 네이처는 매년 12월 ‘네이처10’을 발표해 왔다. 과학계에서 큰 성과를 냈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 주로 선정된다. 재작년에는 오픈AI의 챗GPT가 뽑혀 사상 처음 비인간(非人間)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2016년 네이처10에 선정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2021년에 선정된 존 점퍼 박사는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번에 네이처는 수전 모나레즈 전(前)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최고책임자를 ‘네이처 10’의 첫 번째 인물로 소개했다. 모나레즈는 ‘백신 반대론자’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반대했다가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해임됐다. 케네디 장관이 CDC 주요 과학자들을 해고하라고 지시했는데, 모나레즈가 따르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압력을 거부하고 과학적 양심을 지킨 모나레즈에 대해 네이처는 ‘공중 보건 수호자’라고 평가했다.

◇2년 연속 중국인 2명 포함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중국 과학자 2명이 ‘네이처 10’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초 저비용 고성능 AI(인공지능)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은 테크 분야의 ‘파괴적 혁신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선정됐다. 중국과학원의 두멍란 박사는 9000m 깊이 일본 북동쪽 쿠릴-캄차카 해구에서 메탄·황화수소에 의존해 사는 심해 생태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동물 생태계를 발견한 것이다. 두 박사와 동료들은 평균 6시간씩 총 24회 심해 탐사에 나섰다. 1.8m 길이에 3명이 탑승한 잠수정은 폐쇄 공포증을 유발할 법하지만, 두 박사는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타임머신 같다”고 했다.

세계 최초로 개인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로 건강을 회복한 아기 KJ 멀둔도 ‘네이처 10’에 선정됐다. 희소 유전 질환을 안고 태어난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생명을 잃을 위험에 놓였는데, 미국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연구팀이 긴급하게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도입해 건강을 되찾았다. 네이처는 “초개인화된 유전자 편집 치료가 이처럼 신속하게 이뤄진 적은 없었다”며 “멀둔은 맞춤형 유전자 치료의 길을 연 아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