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신약 개발과 임상은 물론이고,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 형태도 바꿔놓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 제약·바이오 업계의 축도 AI에 의해 확 달라질 것이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미국 제약사 BMS의 스티브 스기노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총괄 부사장./BMS

미국 제약사 BMS(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의 스티브 스기노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총괄 부사장이 최근 서울을 방문해 본지 인터뷰에서 밝힌 전망이다. BMS는 AI 혁신을 강조하는 글로벌 제약사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외부 업체와 손잡고 연구·개발을 하는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BMS가 보유한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 중 60%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발굴됐다.

스기노 부사장은 “AI로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임상에 속도를 낼수록 환자들이 신약을 기다리는 기간도 줄어들게 된다”며 “AI가 환자 건강권을 위해서도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다음은 스기노 부사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BMS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미국 병원을 중심으로 CT나 엑스레이 촬영 후 이를 AI로 분석해 종양이나 폐 병변을 더욱 정확하게 찾아내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외부 영상의학 AI 기술 업체와 손잡고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비소세포폐암,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에게 특히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미국에선 폐암 환자의 절반가량이 3~4기에 진단을 받는데, 이 경우엔 장기 생존율이 10% 미만에 그친다. 반면 1~2기에 진단을 받으면 장기 생존율이 60~70%까지 늘어난다. AI 분석으로 조기 진단율을 늘리고, 이를 통해 환자 생존율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내년엔 이 소프트웨어를 유럽, 미국, 중동 등 60개 이상 병원에 공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이런 질병 진단 기술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하는 이유가 있나.

“신약을 개발해도 모든 나라의 환자에게 공급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이를 흔히 ‘드럭 래그(Drug Lag)’ 또는 ‘드럭 로스(Drug Loss)’라고 부른다. 이 시간 동안 환자들의 상태가 더 나빠지면 그만큼 치료하기 어려워진다. 혁신 신약을 개발해도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약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격차를 줄여줄 수 있는 것이 AI 소프트웨어다. 현재 많은 나라는 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재정 압박이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필요한 적절한 시점에 제공해야 의약품도 효과를 낼 수 있고, 건강을 위한 투자도 빛을 발할 수 있다. AI 혁신이 계속 필요한 이유다.”

─AI 혁신이 신약 접근성도 높인다는 얘기인가.

“맞다. 실제로 글로벌 신약이 출시됐을 때 1년 내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은 미국의 경우 78% 정도지만, 한국은 5%에 불과하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신약 비율도 미국은 85%지만, 한국은 22%에 그친다. 글로벌 첫 허가부터 각 나라의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 역시 미국은 4개월, 한국은 46개월로 차이가 난다.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AI 의료 지원은 필요하다.

또한 AI를 활용하면 개인 유전 정보와 건강 기록을 기반으로 건강 상태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해 만성 질환에 대한 조기 개입과 치료도 가능해진다. 신약을 통한 치료 성공률도 그만큼 높일 수 있다”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계속하고 있다.

“BMS는 ‘과학이 있는 곳으로 간다(We’ll go where that science is)’는 원칙을 내걸고 잠재력이 큰 외부 기업과의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규모 제조 기업부터 스타트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2022년부터 ‘서울-BMS 이노베이션 스퀘어 챌린지’를 통해 단백질 분해 플랫폼을 보유한 ‘프레이저 테라퓨틱스’, 알츠하이머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일리미스 테라퓨틱스’, AI 기반 약물 설계 플랫폼을 가진 ‘갤럭스’ 등과 협력했다. 최근엔 오름테라퓨틱스와는 약 1억달러의 선급금과 추가 마일스톤을 포함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 시장일까.

“AI 기반 의료가 정착하려면 충분한 인구 규모와 그로부터 생성되는 데이터, 국가 단위 건강보험 데이터, 기술 친화적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시장이다. 디지털·AI 기반의 의료 혁신이 실현될 수 있는 시장이며, R&D 측면에서도 우선순위 시장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