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뚱냥이(비만 고양이)’도 조만간 비만 치료제로 살을 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위고비’나 ‘마운자로’처럼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의 동물 전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고양이도 비만 치료제 맞는다
2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제약회사 ‘오카바 파마슈티컬스’는 고양이 전용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 임상을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인체용 약물을 동물용으로 전환하는 연구에 매진하는 생명공학기업이다. 이번에 고양이 전용으로 개발하는 비만치료제는 주사 형태가 아니라 쌀알보다 조금 큰 ‘피하(皮下) 캡슐형 임플란트’다. 고양이 피부에 이식해 6개월 동안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 연구 책임자는 “캡슐을 피부 안에 넣고 6개월쯤 지나면, 뚱뚱했던 고양이가 날씬해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만은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당뇨, 지방간, 소화기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만성 질환이다. 미국 반려동물 비만 예방 협회(APOP)에 따르면, 미국에서 약 59%의 개와 약 61%의 고양이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다. 이 중 수십만 마리는 당뇨병을 앓고 있다. 반려동물이 당뇨병에 걸리면 하루 한두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 비용이 적지 않다 보니 안락사를 택하는 경우도 일부 있다. 반려동물용 비만치료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미국 바이오테크 ‘프로링크스’는 당뇨병에 걸린 고양이를 위해 월 1회 투약하는 GLP-1 계열 주사제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다른 바이오 기업 ‘악스턴 바이오사이언스’도 비만 고양이와 개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맞는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식욕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열을 내면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갈색 지방 활성화를 돕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려동물 건강식품 기업인 ‘베터초이스’도 GLP-1 계열의 반려동물용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이 회사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면 누구든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반려동물의 체중 감량을 돕는 각종 치료제·상품·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4년 91억달러(약 13조원) 정도였다. 2034년엔 173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임상은 더 필요
한계도 있다. GLP-1 계열 치료제를 사람이 처음 투여할 때 흔히 겪는 구토나 설사 같은 부작용을 동물들도 비슷하게 겪을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대 수의생리학자 토마스 루츠는 뉴욕타임스에 “GLP-1 치료제가 동물에도 효과가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대규모 임상이 부족해 안전성을 입증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카바 파마슈티컬스가 임상 시험 확대를 계획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카바 측은 내년 초까지 일단 50마리가 넘는 비만 고양이를 모집해 임상 시험을 하고, 내년 여름엔 더 큰 규모의 임상 시험을 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는 “임상시험을 확대함으로써 체중 감량제뿐 아니라 동물의 수명 연장 약물로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실패 사례도 있다. 과거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동물 의약품 부문이었다가 2013년 인적 분할해 상장한 조에티스는 2007년 비만 개를 위한 식욕 억제제 ‘슬렌트롤’을 내놓고 FDA 승인까지 받았지만, 몇 년 만에 단종했다. 반려견이 밥을 잘 먹지 않자 약 투여를 주인이 꺼렸기 때문이다. 조에티스도 현재 GLP-1 계열의 반려동물 비만 치료제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