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발사체 누리호에 탑재된 국내 최초 우주 의학 위성 ‘비천(BEE-1000)’은 미국 제약사 머크(MSD)의 면역항암제의 단백질 결정화 과정을 우주에서 모니터링하는 임무를 맡았다. 신약 설계에 필요한 고해상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다른 탑재체 ‘바이오 캐비닛’은 우주로 날아가 줄기세포 3D(차원) 프린팅과 분화, 배양 기술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왜 항암제 개발이나 줄기세포 성장을 굳이 우주까지 날아가서 연구하는 것일까. 우주의 미세 중력 환경에 그 비밀이 있다.

그래픽=양인성

◇우주에서 항암제 만드는 이유

우주에선 중력이 0에 가까워서 실험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신약을 만들 땐 몸에서 병을 일으키는 핵심 단백질을 겨냥한다. 이를 위해 ‘타깃 단백질’을 3D 구조의 결정 형태로 먼저 만들게 된다. 약을 잘 만들려면 단백질의 모양을 원자 단위 형태로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약 개발을 위해선 먼저 단단한 결정 형태로 만들고, X선을 쬐어 단백질의 3D 구조를 만든다. 지구에선 중력의 영향으로 단백질 결정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우주의 미세 중력 환경에선 침전이나 대류가 없어 균일하고 순도 높은 결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 정확한 단백질 3D 구조를 얻을 수 있으니, 이를 기반으로 정밀한 신약 설계도 가능해진다. 약물 입자도 더 일정하게 만들 수 있다.

우주는 인간의 세포, 조직, 장기 등을 재생하기 위한 줄기세포를 키우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지구에선 줄기세포를 100만개 키운다면 이 중 100개 정도만 임상(치료)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불량률이 높다. 그만큼 줄기세포를 잘 키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줄기세포가 워낙 예민하다 보니 중력의 영향으로 세포가 변형되거나, 세포끼리 붙어 덩어리가 생기는 현상도 생긴다.

반면 우주에선 배양액이 골고루 퍼져 영양분과 산소를 균일하게 공급할 수 있고 세포가 바닥에 눌리거나 덩어리가 되는 일이 크게 줄어든다. 줄기세포를 활용해 인공 혈액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세계 기업들이 우주 기반 줄기세포 배양을 연구하는 이유다.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실험을 진행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한 기업이다. 2022년엔 ISS에서 난소암·유방암 치료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96시간 만에 암세포를 100% 사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마이크로퀸은 지구에서보다 8년가량 빠르게 결과물을 냈다는 분석도 내놨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새로운 약물 전달 기법을, 일라이릴리는 당뇨병 치료제를 우주에서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바이오도 우주로 뛴다

국내 기업들도 우주로 뛰기 시작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지난 8월 우주의 미세 중력 환경에서 의약 실험을 하기 위한 실험 플랫폼 ‘BEE-PC1’을 스페이스X의 우주 화물 보급 미션을 통해 ISS로 발사했다. 국내 최초다. 이번에는 누리호에 실어 고도 600㎞ 궤도로 보낸다.

최근엔 카톨릭우주의학연구센터도 우주 환경을 활용해 인공 혈액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지구에서 우주 환경을 흉내 내는 장치(미세 중력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인공 혈액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한다. 2027~2029년엔 실험실을 우주로 보내 실제 ISS·소형 위성에서 실증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사 보령도 우주의 미세 중력을 활용해 암, 노화, 정신 질환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50여 기업과 파트너 제휴를 맺었고 민간 우주 항공사 액시엄스페이스에도 투자했다.

LG그룹도 수혈용 인공 혈액을 연구하는 아트블러드와 협업하고 있다. 인공 혈액을 우주에서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 입셀도 우주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에 기반한 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7년 유인 우주선에 자동 배양기를 띄워 실제 우주에서 실증하는 것이 목표다. 우주에서 인공 혈액과 조혈모세포를 대량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성공할 경우 혈액암, 빈혈, 면역 결핍증 등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입셀 측은 “우주 개발을 통해 현재 1인 수혈분(약 300mL) 만드는 데 1억원 수준인 인공 혈액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