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약사 머크(Merck)는 지난 20일 미국 바이오 기업 ‘발로헬스’의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도입하는 4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머크 측은 본지에 “발로헬스와 손잡고 AI 도구를 활용해 어떤 단백질이 파킨슨병을 일으키는 핵심 원인인지 찾는 것부터 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것까지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테크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 AI를 통한 신약 개발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10년 넘게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2~3년가량으로 대폭 단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 10월 엔비디아와 수퍼컴퓨터를 개발하는 한편, AI 기반의 약물 탐색 플랫폼을 론칭했다. 미국 제약사 BMS도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투입한 AI 도구를 활용해 신약 설계와 후보 물질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BMS 측은 “AI 검증을 100% 통과한 후보 물질들만 연구해 분석 정확도를 빠르게 올렸고, 이를 통해 연구 비용을 55%가량 절감했다”고 했다.

빅테크도 AI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해 적용 범위가 확장된 AI 모델 알파폴드3를 공개, 단백질 3차원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신약 개발 자회사 아이소모픽 랩스도 알파폴드3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나선 상태다.

조만간 AI가 발굴한 신약 후보 물질이 임상 3상에 진입할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미국의 AI 신약 개발사 인실리코 메디슨은 ‘AI 발굴 신약’을 가장 먼저 시장에 내놓을 주자로 꼽힌다. 2019년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후보 물질을 AI를 통해 단 46일 만에 내놨다. 올해 초엔 임상 2상을 통과했다.

다만 AI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해도 최종 단계까지 성공하는 건 쉽지 않다는 회의론도 계속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가 5000만달러를 투자한 바이오 기업인 리커전 파마수티컬스는 최신 AI 시스템을 통해 신약 물질을 발굴하고 있지만, 지금껏 특별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영국 신약 개발사 ‘익센시아’도 2020년 AI로 항암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굴했으나, 2023년 임상에 실패하면서 개발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