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8일 서울 아산병원. 자메닉스 AI로봇으로 신장결석수술하고 있는 의료진 모습. /김지호 기자

“돌이 상당히 크고 여러 개라 난도가 꽤 높긴 한데…. 그래도 해봅시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 수술실. 집도를 맡은 박주현 교수가 수술대 옆에 마련된 자메닉스 인공지능(AI) 로봇 앞에 앉았다. 심각한 옆구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76세 남성 환자가 신장 결석 판정을 받고 긴급 수술을 하는 날이었다. 270도로 휘어지는 내시경 카메라가 환자 방광을 거쳐 신장으로 들어간 후, 모니터엔 ‘결석 크기 20.05㎜’가 떴다. 이후 AI가 결석 크기를 바로 측정한 것이다. 박 교수가 레버를 움직이자 눈앞 모니터에선 바늘처럼 얇은 광섬유 레이저가 나오면서 환자 몸속 결석을 깨뜨리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이 병원 비뇨의학과 박형근 교수는 “본래 신장 결석 수술은 환자가 호흡을 하면 몸속 결석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 꽤 까다로워 의사가 최소 2명 이상 필요했다”면서 “AI가 레이저 위치를 자동 보정하기 때문에 수술 정밀도도 높아졌고, 필수 의료 인력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AI가 질병 판독 및 진단부터 수술까지 ‘AI 닥터’로 진화하면서 의료계 인력 부족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 인력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저소득·중하위 국가에선 2030년까지 1000만명 이상 의료 인력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환경도 만만치는 않다. 의료 파업으로 일선 병원 현장에서 겪는 인력 공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주요 병원들은 최근 적극적으로 ‘AI 보조 의사(AI assistant doctor)’를 도입하고 있다. 의사의 경험과 직관에 AI 보조 닥터의 정확성과 속도가 더해지면서 의료 질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수술 인력 절반으로 줄인 AI

연세암병원 박형석 유방외과 교수는 최근 ‘AI 딥러닝 로봇 수술 보조 시스템’을 개발했다. 유방암 환자를 로봇으로 수술할 때, AI 모델이 수술 절개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정확히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AI가 그린 절개선을 토대로 수술하면 불필요하게 조직을 많이 잘라내는 실수를 줄이고, 신경이나 혈관 같은 중요한 조직을 건드릴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박 교수는 “기존엔 유방암 수술을 할 땐 의사가 3~4명씩 필요했지만, AI를 활용하면 1~2명 정도로 줄고 수술 시간도 절반으로 단축된다”고 했다. 중앙대병원은 지난 6월 척추 AI 수술 로봇 ‘큐비스 스파인CS200’을 도입했다. 척추 수술을 할 땐 보통 아주 작은 나사(척추경 나사)를 심어 척추를 고정하는데, 나사가 뼛속 신경이나 혈관을 조금만 건드려도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이때 AI 수술 로봇을 이용하면, AI가 환자의 CT나 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하고 어디에 어떤 각도로 나사를 넣을지 알려준다. 병원 측은 “AI가 가장 까다로운 부분을 가이드해줘 수술 시간이 40%가량 줄었다”고 했다.

환자의 무릎 상태를 AI로 판단하는 소프트웨어 ‘코네보 코아(CONNEVO KOA)’는 엑스레이로 환자의 뼈 구부러진 각도를 정확히 측정, 증상의 심각한 정도를 빠르게 판단한다. 이를 개발한 서울대병원 노두현 정형외과 교수는 “AI가 수술이 필요한 관절염 환자 등을 먼저 분류해줘 업무량이 30~40%가량 줄었다”고 했다.

◇하루 암 판독 100건… 업무 부담도 줄인다

AI 보조 의사는 유방암, 폐암 같은 각종 암부터 폐 질환, 관상동맥 질환 등의 심각도를 판단할 때도 필수가 됐다.

서울대병원 흉부 영상 판독실. 황의진 교수가 PC에서 흉부 X선 사진을 살펴보다가, AI 버튼을 누르니 우측 폐에 빨간색과 노란색 음영과 ‘Ptx 98%’라는 문자가 생겨났다. 해당 부분에 기흉(氣胸)이 나타났을 확률이 98%라는 뜻이다. 서울대병원은 2018년부터 의료 AI 기업 루닛의 영상 판독 보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AI는 하루에 흉부 X선만 1000여 장을 살펴본 뒤 0~100점까지 매기고, 비정상적인 부위를 음영으로 표시해준 뒤 어떤 질환인지 소견도 낸다. 황 교수는 “판독 대기만 수천 건씩 쌓이는 의사 부담을 AI가 크게 줄여줘 진단 효율을 높여주고 있다”고 했다.

대한영상의학회에 따르면, 국내 종합검진센터 3곳에서 흉부 엑스레이 5887건을 판독하면서 AI를 활용했더니 초기 비(非)환자들을 빠르게 분류함으로써 업무량의 42.9%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AI는 속도뿐만 아니라 진료의 질적 측면에서도 의사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 국내 5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40세 이상 여성 2만4543명에 대한 유방암 판독에서 의사가 혼자 판독했을 땐 1000명당 5.0명의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었고, AI를 활용했을 땐 1000명당 5.7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