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의 모습. 이날 뉴욕 증시는 인공지능(AI) 관련주 거품 우려 지속에 장중 급락 반전하며 약세로 마감했다. /AFP 연합

인공지능(AI) 거품이 꺼지면 AI 인재들이 산업계를 떠나 과학계로 넘어가 새로운 혁신 연구를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AI 거품이 꺼지면 산업계엔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겠지만, 이들이 나중엔 학계에서 양질의 연구 성과가 나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나오는 AI 거품론

경제학자들은 현재 AI의 상승세는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현재 AI 분야에 몰린 투자금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 직전에 인터넷 기업에 쏠렸던 투자액의 17배에 달한다. 시가총액 4조6000억달러 규모의 AI 기업 엔비디아는 미국·중국·독일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경제 규모보다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은 AI가 실질적인 수익 개선에 기여하진 못하고 있다고 본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약 80%는 ‘수익에 뚜렷한 영향이 없다’고 답했다. 오픈AI CEO 샘 올트먼조차 최근 업계 일부가 “지금 꽤 거품스러운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일부 분석가가 AI 산업이 곧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거품 꺼져도 연구는 계속된다

반대편에선 AI 거품이 꺼진 뒤에 오히려 새로운 과학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경제학자 존 터너는 “닷컴 버블이 붕괴한 이후에도 전자공학·컴퓨터 공학·과학 분야의 논문 수는 오히려 늘어났고,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보급도 끊기지 않았다”고 했다. 즉, 연구는 산업 충격과 별개로 계속됐다는 얘기다.

학자들은 AI 거품이 무너져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학자인 미국 메릴랜드대 브렌트 골드파브 교수는 “AI 거품이 무너지면 AI 스타트업 혹은 신생 기업에선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이뤄지고, 구글·엔비디아·오픈AI 같은 대형 기업들만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 인력이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기술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터너 교수 역시 “1896년 영국 자전거 시장 붕괴 후엔 갈 곳 없던 자전거 기술자들이 오토바이·자동차·비행기 산업을 발달시켰다. 마찬가지로 닷컴 버블 붕괴 후엔 인터넷이 오히려 더 빠르게 확산됐다”고 했다.


◇기업에서 나온 인재들, ‘더 유익한 기술’ 내놓을 것

메릴랜드대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키르시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AI 붕괴로 산업계에서 일자리를 잃은 인재들이 학계로 돌아오면 오히려 사회에 훨씬 유익한 기술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령 이를 통해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50년 난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 딥마인드의 AI 소프트웨어 ‘알파폴드’ 같은 도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처지는 또한 “이미 이런 움직임은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가령 올해 오픈AI·메타·구글 출신의 최상위 AI 연구자들은 회사를 떠나 소재 과학 스타트업 ‘피리오딕 랩스(Periodic Labs)’를 창업했다. 회사 슬로건도 ‘AI 과학자’를 만들자(Our goal is to create an AI scientist)’다. 대학 연구실, 국가 연구소, 병원 등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험·시뮬레이션용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메타의 최고 과학자였던 얀 르쿤도 최근 “올해 말 회사를 떠나 첨단 AI 형태의 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스타트업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르쿤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AI 초지능’ 개발을 밀어붙이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상업적 대규모 언어 모델(LLM) 대신 과학·로봇·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세계 모델(world models)’을 개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AI 두뇌를 만듦으로써 장기적 의사 결정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