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이 표고버섯 균사체로 반도체 성능 시험을 진행했다. /오하이오주립대

버섯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버섯은 기존 반도체 소재인 광물질보다 구하기도 쉽고 저렴한 데다 친환경적이다. 현재 실리콘 기반 반도체보다 정보 처리 속도가 크게 느리고, 실험 초기 단계여서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지만, 단점을 개선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버섯 반도체’가 실리콘 반도체 칩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은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버섯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버섯이 반도체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알려졌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버섯의 '균사(mycelium)'는 반도체 소재로 쓰일 수 있다. 균사를 설명한 그림. /유튜브 'Fungi Perfecti' 캡쳐.

버섯이 반도체 소재로 쓰일 수 있는 건 심은 땅 주변과 버섯 안에 퍼져 있는 ‘균사(菌絲·곰팡이실, 뿌리줄기)‘ 덕분이다. 균사는 수분과 이온을 함유해 전기가 통하는 성질을 지녔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표고버섯을 키우면서 이 균사가 접시 전체를 덮게 했다. 그 뒤 버섯이 다 자라기 전에 올라온 균사 덩어리를 통째로 말려 동그란 디스크로 만들고 이를 재료로 사용했다.

연구팀은 이후 버섯 균사에 전기를 세게, 자주 흘려줄수록 전기가 더 잘 통하는 길이 생기고 내부 저항은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대로 전기를 끄면 다시 저항이 차츰 높아졌다. 버섯 균사가 전기가 흘러간 흔적을 기억하고 저장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과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신개념 반도체를 ‘멤리스터’라고 부른다. 버섯 균사가 멤리스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버섯 멤리스터가 최대 5850Hz 환경에서 약 90% 정확도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버섯 멤리스터가 1초에 5850번 데이터를 읽거나 쓸 수 있고, 동작 이후 저장된 데이터를 89~91% 정확도로 읽어냈다는 얘기다.

이 버섯 멤리스터는 전력 소모도 적은 편이었다. 연구팀은 실험에 최대 5V(볼트)를 넘지 않는 전기를 사용했다. 연구팀은 “버섯 반도체는 앞으로 절전이 중요한 로봇이나 자율 주행 차량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버섯이 광물보다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생분해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속 가능한 친환경 컴퓨팅 시스템을 구현할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섯은 균사가 만든 열매다. 균사는 땅속에 넓게 퍼져 버섯을 키워낸다. 이 균사는 전기가 통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반도체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 /픽사베이

물론 아직까진 한계가 크다. 현재 실리콘 기반 반도체보다 정보 처리 속도가 100만 배가량 느리다. 실험 초기 단계인 만큼 상용화되기까진 갈 길이 꽤 멀다.

연구팀은 그럼에도 “버섯이 반도체 소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버섯 균사를 대량으로 길러내 이를 멤리스터로 만들고 장치를 소형·집적화하는 것을 연구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