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운영 허가 기간 40년이 지나 2년 7개월째 멈춰 선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운영 기간이 2033년 4월로 10년 연장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3일 회의에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허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5인, 반대 1인으로 통과시켰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 9월과 10월 두 차례 심의에서 의결을 보류했다가 세 번째로 심의한 이날 회의에서 허가안을 의결했다. 원자력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큰 틀에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AI(인공지능) 세계 3대 강국을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데이터센터 확충 등으로 급증할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기존 원전의 운영 연장은 필수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음 달 운영 기간이 끝나 가동이 멈추는 한빛 1호기를 포함해 계속 운전 신청을 낸 원전 9기 재가동 허가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원전업계에선 원전 운영 연장을 위한 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신규 원전 건설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리 2호기의 경우, 한국수력원자력이 2022년 4월 운영 연장 신청을 했는데, 3년 반 만에 허가가 나왔다. 연장 기간도 가동을 멈춘 2023년 4월부터 계산하기 때문에 이날 10년 연장 결정에도 7년 5개월만 더 쓸 수 있다. 가동 중단한 2년 7개월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게 됐다. 원전 업계는 이 기간 원전보다 비용이 비싼 LNG(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해 전력을 생산한 점을 감안하면 손실이 1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현재 10년인 운영 연장 기간도 미국처럼 20년으로 늘려야 한다”며 “원전 생태계 유지와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신규 원전 건설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고리 2호 삼수 끝 ‘계속 운전’… “AI 시대, 다른 9기 심의 서둘러야”

국내에서 40년 운영 기간이 다한 원전에 대해 추가 운영 허가가 난 건 2008년 고리 1호기, 2015년 월성 1호기에 이어 고리 2호기가 세 번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원전 계속 운전을 승인한 사례이기도 하다. 원전 정책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였던 이재명 정부에서 고리 2호기에 대한 계속 운전 승인이 난 데 대해 원자력 업계에선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문재인 정부 때 ‘탈(脫)원전’ 그림자에서 벗어나 ‘실용적 에너지 믹스’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2호기는 가압 경수로 방식의 출력 685메가와트(MW)급 원전으로 1983년 4월 9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설계 당시 허가 기간(40년)이 다해 2023년 4월 8일 가동이 중단됐다. 13일 원안위 승인으로 고리 2호기는 곧바로 재가동 준비 절차에 들어간다. 현재 진행 중인 설비 개선을 끝내고 정기 검사로 안전성을 확인한 뒤 내년 2월 발전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한수원은 “고리 2호기 재가동은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전력 수요 증가에 대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의 기간 단축하고 연장 기간 늘려야

고리 2호기를 포함해 가동 연한을 늘려달라고 원안위에 신청한 원전은 10기에 달한다. 이 원전의 발전 용량은 8.45기가와트(GW)로 전체 원전 발전 용량(26.05GW)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번처럼 원전 계속 운전 심의 기간이 길어져 가동이 중단되면, AI 시대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정부가 AI 3대 강국을 공언한 상황에서 AI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전력 생산에 원전은 필수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우선 공급하기로 한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냉각과 인프라까지 포함해 최대 1GW(기가와트) 전력이 필요하다. 이는 고리 2호기의 1.5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이루려면 기존 원전 운영을 중단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원안위는 현재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나 가동이 중단된 고리 3·4호기에 대한 심의는 내년 상반기 끝낸다는 계획이다. 같은 이유로 다음 달 멈춰서는 한빛 1호기는 내년 하반기 심의를 마친다는 목표다. 한울 1·2호기는 2027년 상반기에, 월성 2·3·4호기는 2027년 하반기에 재가동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원안위가 올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 밝힌 대로 심의가 진행될 경우, 한울 1·2호기와 월성 3·4호기는 가동 연한이 끝나기 전에 연장 허가를 받게 돼 발전이 중단되지 않는다.

앞서 고리 2호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운영 연장 신청이 늦어지면서 2년 넘게 가동을 멈춰야 했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수조 원씩 드는데, 가동 연한이 끝났다고 기존 원전을 멈춰 세우는 것만큼 낭비도 없다”며 “이재명 정부는 전력 문제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실용주의적 노선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재가동 허가에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기존 원전 안전성도 신규 원전이 뒷받침”

현재 원전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10년 주기인 운영 연장 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원전 92기 중 84기(약 90%)가 기존 40년 수명에 20년 추가로 운영을 허가받았다. 특히 버지니아에 있는 서리(Surry) 1호기는 1972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는데 두 차례 운영 기간이 연장돼 현재는 2052년까지 가동이 가능하다. 전체 운영 기간이 80년이다. 미국은 지난해 ‘2050 원자력 확대 로드맵’을 통해 최대 80년인 원전 운영 기간을 100년까지 늘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일부 원전은 40년에서 20년을 연장해 최대 60년까지 운전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도 6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고, 스웨덴도 지난해 60년에서 80년으로 연장하겠다는 방향을 발표했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416기 중 189기(45%)가 40년 이상 가동 중이다. 전문가들은 고리 2호기를 비롯해 국내 원전도 80년 이상 무난하게 쓸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최성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AI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처럼 연장 허가 기간을 20년씩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원안위 결정에 대해 환경 단체는 반발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성명을 내고 “국민 안전을 포기한 결정이며 절차적 위법에도 강행한 위헌적 결정”이라며 승인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출범 초기부터 핵발전 안전 강화를 강조해온 정부가 실용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수명 연장 절차를 묵인했다”며 “이재명 정부는 고리 2호기를 비롯한 모든 노후 핵발전소 영구 정지를 결정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