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비만치료제인 ‘위고비’와 ‘젭바운드(마운자로)’ 가격이 미국에서 대폭 인하됐다.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한 달 7만원대에도 이들 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여전히 수십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 젭바운드는 미국 일라이 릴리가 각각 개발한 차세대 비만 치료제다.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을 모방한 약물로, 주 1회 주사 방식으로 투여된다. 뇌의 식욕 신호를 억제하고 음식이 위를 천천히 통과하도록 해 포만감을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애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면서 글로벌 비만 치료 시장을 이끄는 핵심 약물로 자리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美 트럼프 압박에 비만약 가격 ↓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고비 가격이 월 1350달러(198만원)에서 250달러(37만원)로, 젭바운드는 1080달러(158만원)에서 346달러(51만원)로 내려갈 것이라고 지난 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발표했다.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의료 지원)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대상자는 본인 부담금이 50달러(7만원)까지 내려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제약사들에게 약값을 내리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미국은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정한다. 가격 결정 과정에 민간 보험사와 처방약 급여 관리 업체(PBM)가 개입해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높게 책정됐다. 이번 가격 인하로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의약품 관세가 3년간 면제된다.

미국은 비만 인구가 전체의 40%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라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약값 인하도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정책 성과를 보여주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미국명 젭바운드)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각 사 제공

◇韓 가격 인하는 신중

국내에 위고비는 작년 10월, 마운자로는 올해 8월 상륙했다. 마운자로는 젭바운드와 같은 성분의 제품이다. 미국은 젭바운드를 비만, 마운자로를 당뇨병 치료에 사용한다. 국내는 마운자로를 비만 치료로 허가받아 출시했다.

국내에서 비만 치료제는 용량에 따라 보통 월 20만원대 후반~70만원대에 판매된다. 비만 치료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위고비 용량은 0.25~2.4㎎, 마운자로는 2.5~10㎎다. 저용량으로 시작해 고용량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서울 강남구 A의원 관계자는 “마운자로 5㎎을 48만원대에 판매한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국내도 미국처럼 값을 낮출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오히려 약값이 높던 미국에서 가격을 낮췄기 때문에 반대로 국내에선 당장 가격을 인하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와 한국 릴리도 신중하다. 위고비는 작년 국내 도입 당시 미국보다 값을 저렴하게 들여왔고, 올해 8월 마운자로 출시를 앞두고 공급 가격을 한 차례 인하했기 때문이다. 한국 릴리도 국내 정책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릴리 관계자는 “가격은 이후 협상과 규제 조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췌장염, 구토, 설사 부작용도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이거나, 체질량지수가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같은 질환이 있는 성인에게 처방해야 한다. 그런데 정상 체중이거나 만 12세 미만 아이들에게도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위고비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만 12세 미만에게 69건 처방됐다. 비만과 상관 없는 정신건강의학과, 안과, 치과에서도 처방이 이뤄졌다.

무분별한 처방은 비만 치료제 남용과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비만 치료제는 급성 췌장염, 구토, 설사,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 급성 췌장염은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복부 통증과 메스꺼움, 발열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한다.

실제 국내에선 위고비를 투여하고 151명이 급성 췌장염에 걸려 19명이 응급실을 찾았다. 영국 보건당국은 지난 6월 비만 치료제를 투여하고 급성 췌장염을 호소하는 사례가 수백 건에 이르자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