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생명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제임스 왓슨이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왓슨이 생전에 몸담았던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CSHL)’는 7일(현지 시각) 왓슨이 전날 롱아일랜드 이스트노스포트의 한 호스피스 시설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왓슨은 25세였던 195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유전 정보가 세대 간 어떻게 복제·전달되는지를 처음으로 밝혀 현대 분자생물학의 문을 열었다. 이 공로로 두 사람은 1962년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의 발견은 훗날 유전병 연구, 유전자 치료제, 맞춤형 의료, 유전자 가위(CRISPR) 등으로 이어지며 인류의 질병 연구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던 1968년 왓슨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해 연구소를 분자생물학의 세계적 거점으로 키웠다.
그는 1990년 출범한 인간게놈프로젝트(HGP)의 초대 책임자를 맡아 인간 유전자 전체(약 30억 개 염기서열)를 해독하는 국제 공동 연구를 주도했다. 유전자 특허 문제로 1992년 물러났지만, “생명체의 청사진(유전자)은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는 특허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하면서 뒤늦게 실현됐다.
왓슨의 삶은 영예만큼이나 논란으로 점철됐다. 그는 2007년 영국 선데이타임스 인터뷰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고, 2019년 PBS 다큐멘터리에서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해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로부터 모든 명예직을 박탈당했다. 2014년에는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으며 “가족과 연구 지원에 쓰겠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당시 과학계 일각에서는 “과학계에서 고립된 노벨상 수상자의 반항적 제스처”라는 평가가 나왔다. 러시아 재벌이 410만달러에 노벨상 메달을 낙찰받은 뒤 다시 왓슨에게 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