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데이터처 최신 통계에 따르면, 암으로 사망한 인원의 21.9%는 폐암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간암(11.9%), 대장암(11.0%)의 거의 2배에 달한다.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가 작은 소세포(小細胞)폐암과, 비(非)소세포폐암으로 구분한다. 폐암의 80~85%는 비소세포폐암이다. 폐암은 초기 단계에서 뚜렷한 증상이 거의 없어 ‘소리 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로 불린다. 국립암센터가 국가폐암검진 대상을 50~80세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배경도 조기 진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한폐암학회가 지정한 ‘폐암 인식 증진의 달’인 11월을 맞아 본지와 만난 부산대병원 호흡기내과 엄중섭 교수는 “담배를 전혀 안 피웠는데 왜 폐암에 걸린 것이냐고 묻는 환자분이 많다”며 “최근 외래 환자의 절반 이상이 비흡연자”라고 말했다. 폐암은 필연적으로 흡연과 연결된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대병원 호흡기내과 엄중섭 교수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폐암은 연간 3만명 이상 발생하는데 뇌 전이처럼 돌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일수록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국 환자들이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려가는 현상은 의료계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장경식 기자

◇암세포 전이가 잦은 폐암

폐암은 암세포 전이가 빈번한 암으로 꼽힌다. 폐는 혈관과 임파선이 많은 장기여서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비소세포폐암은 뇌 전이가 자주 발생한다. 극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에 뇌로 전이된 폐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잦은 이유다. 특히 비소세포폐암의 30~40%를 차지하는 EGFR(표피 성장인자 수용체) 변이 양성 환자의 경우는 뇌 전이 비율이 높다. 엄 교수는 “뇌전이로 팔·다리를 쓰지 못하거나 심한 두통과 구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가 상당수”라며 “국산 항암제 ‘렉라자’로 치료한 경우가 300건 이상인데 1~2주 만에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유한양행이 초기물질을 도입해 개발하고 기술 수출한 렉라자는 지난해 병용 요법으로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다. 3세대 표적 치료제로 꼽힌다. 엄 교수는 “지금은 국내 병원의 90% 이상이 EGFR 변이 환자에게 3세대 표적 치료제를 최우선으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며 “CT(컴퓨터 단층촬영)에서 2개월 만에 종양이 손톱 이하 크기로 줄어든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임상 연구에서 렉라자는 뇌전이 환자의 질병이 진행하지 않은 기간(무진행 생존기간)의 중앙값이 1세대 표적항암제(8.4개월)보다 훨씬 긴 28.2개월로 조사됐다. 엄 교수는 “렉라자는 특히 뇌전이 환자에게서 약효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표준 치료는 연고지 병원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공개한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인원의 41.5%(623만5000명)가 다른 지역에서 온 환자로 집계됐다. 서울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 10명 중 4명은 ‘원정 진료’ 인원이었다는 의미다. 이들이 쓴 진료비는 10조8055억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엄 교수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려가는 집중 현상은 의료계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표준 치료가 가능한 단계라면 굳이 서울로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방 대학병원에서도 똑같은 약을 쓰고 똑같은 가이드라인으로 진료하는데, 서울로 몰려가는 탓에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든다는 것이다. 그는 “폐암은 매년 3만명 이상 발생하는데, 이 인원을 서울 대형 병원이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일본처럼 각 지역 병원이 환자 치료와 관리를 전담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엄 교수는 “암의 뇌전이처럼 돌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질환일수록,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3~4시간 이동하는 원정 진료는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에 대응하기 어려워 환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엄 교수는 치료 접근성의 또 다른 불평등으로 임상시험의 서울 편중을 지적했다. 그는 “임상 3상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 환자는 출시 전(前) 고가 신약을 무료로 투여받는 기회를 접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임상시험 인프라 확장과 제약사의 지역 기반 임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렉라자와 같은 국산 항암 신약 개발로 전국적으로 편차가 거의 없는 치료가 가능해졌는데, 서울 대형 병원 선호 현상과 지역 임상 지원 등 의료 시스템은 혁신이 더디다”고 했다.

☞표적 치료제

암세포가 지닌 유전자 변이, 단백질, 신호 경로 등 특정 분자 표적을 정밀하게 겨냥해 공격하는 치료제다.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표준치료

의학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치료법을 뜻한다. 가장 많은 환자에게 효과가 확인된 ‘기본 치료법’으로 우선 적용하는 치료 방식이며, 새로운 치료법은 이를 넘어서는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