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잘 안 보이는 환자들이 글도 읽고 사물도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력 치료 기술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전자 눈’ 이식술부터 망막 재생술까지 다양한 기술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 난치성 안질환의 모든 진행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3D(차원) 바이오프린팅 기술, 노안을 개선하는 특수 안약도 개발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빛’을 가져다주는 전자 눈 이식

앞을 못 보던 노인들이 지하철 표지판까지 읽었다. ‘전자 눈 임플란트’ 기술 덕분이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 안과의인 대니얼 팔랑커 교수팀은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 38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밝혔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 세포가 노화해 시력이 떨어지는 병이다. 심하면 시력을 잃는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프리마(PRIMA) 디바이스’라는 초소형 전자칩을 이식했다. 눈 망막 아래 ‘망막하’에 광전 마이크로칩을 심은 것이다. 이 칩의 크기는 가로 2㎜, 세로 2㎜ 정도. 두께는 30㎛(마이크로미터) 정도로 머리카락보다 얇다.

이식 수술 후엔 참가자들에게 특수 안경을 씌웠다. 안경엔 카메라가 달렸다. 휴대용 컴퓨터도 몸에 달아줬다. 안경에 달린 카메라가 주변 세상을 촬영해 이를 빛 형태로 망막에 이식한 칩으로 쏴주면, 휴대용 컴퓨터는 인공지능(AI)으로 카메라 영상을 칩이 인식하도록 처리했다. 망막의 칩은 카메라에서 받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 뇌로 보내고, 뇌는 이를 인식해 참가자들은 ‘눈이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됐다.

◇포유류 망막 재생

KAIST 김진우 교수팀은 지난 5월 포유류 망막 재생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사람과 물고기의 차이에 주목했다. 물고기는 망막이 손상돼도 망막 안에서 ‘뮐러글리아(Müller glia)’라는 세포가 신경전구세포로 역분화해 새 신경세포를 생성할 수 있다. 반면 사람 같은 포유류의 경우엔 이 기능이 퇴화해 망막이 손상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포유류에서 뮐러글리아 세포의 역분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프록스원(PROX1)’이라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프록스원이 망막 신경 재생을 막는 것이다.

이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연구팀은 망막 퇴행성 질환을 겪는 생쥐의 망막 조직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생쥐의 시력 회복은 6개월 넘게 지속됐다. 김진우 교수는 자신이 창업한 벤처기업에서 퇴행성 망막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난치성 안 질환 재현하는 3D 바이오프린팅

최근엔 국내 연구진이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망막 정맥 폐쇄 과정을 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원재연 안과 교수, 조동우 포스텍 기계공학과 특임교수, 김정주 한국외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망막 정맥 폐쇄 질환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망막 정맥 폐쇄는 고혈압·당뇨 환자들이 많이 겪는 병이다. 망막의 정맥이 좁아지다 막히면서 결국 시력을 잃게 된다. 망막의 3차원 구조, 혈관 협착 현상을 제대로 알아야 치료법을 알아낼 수 있지만, 기존의 동물 실험으로는 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망막 질환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인공 모델을 만들었다. 실제 망막 조직에서 세포를 둘러싼 단백질 성분을 추출해 ‘하이브리드 바이오잉크’를 만들고, 망막 속 혈관층과 세포층, 혈액·망막 장벽을 3D 프린팅했다. 이후 일부 혈관을 인위적으로 좁히고, 질병이 생길 때 나타나는 산소 부족과 염증, 혈관 누출, 망막 기능 저하의 과정을 실험실 칩 위에 재현했다.

지구 반대편에선 노안을 교정하는 안약도 개발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노안연구센터 연구팀은 한 방울만 눈에 떨어뜨리면 안경이나 수술 없이도 노안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약을 개발했다고 지난달 유럽백내장굴절수술학회(ESCRS)에서 발표했다.

연구팀이 만든 안약은 녹내장 환자의 안압을 낮출 때 쓰는 약물인 ‘필로카르핀’과 소염제 ‘디클로페낙’으로 만든다. 필로카르핀은 동공을 작게 만들고 수정체를 조절하는 근육을 수축시켜 수정체가 가까운 물체에 초점을 잘 맞출 수 있도록 한다. 카메라 렌즈를 바짝 당기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연구팀은 아르헨티나의 환자 766명(평균 나이 55세)에게 안약 효과를 시험해 봤다. 그 결과, 2% 농도의 안약을 넣은 그룹(248명)의 69%, 3% 농도의 안약을 넣은 그룹(370명)의 84%는 표준 시력표에서 글씨를 세 줄 넘게 더 읽을 수 있었다. 환자들은 시력이 좋아진 상태가 최대 2년까지 지속되는 것을 경험했다. 평균 기간은 434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