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의 관세 협상 타결 소식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론해 온 ‘수입 의약품 100~200% 관세 부과’ 우려에서 벗어나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29일 관세 협상에서 ‘의약품 분야 최혜국 대우 적용’에 합의했다. 정부는 양해각서(MOU) 이행을 위한 법 제정에 곧바로 착수해 이르면 11월 1일부터 합의사항을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경북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상호 관세는 7월 30일 합의 이후 이미 적용되고 있는 대로 15%로 인하해 지속 적용하기로 했다”면서 “품목 관세 중 의약품과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으며 항공기 부품,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은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대미 수출을 하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를 둘러싼 관세 불확실성은 해소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부터 미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는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밝혀 업계의 불안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업혁신본부 본부장은 “의약품 분야에서 유럽연합(EU),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확보한 것은 최근 미국 내 판매망을 확대 중인 우리 의약품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주요 기업으론 삼성바이오에피스, 대웅제약, 휴젤, GC녹십자, 한미약품,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휴온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이 꼽힌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한 의약품 규모는 39억8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바이오의약품이 94.2%(37억4000만달러)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다만 의약품에 대한 품목 관세를 비롯해 세부 합의사항이 최종 확정되기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현재는 국가별 무역 협상이 이뤄진 것이고, 세부 내용은 의약품에 대한 품목 관세가 발표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미 수출 규모가 작은 제네릭은 무관세가 확인됐지만, 대미 수출 규모가 큰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도 포함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업혁신본부 본부장은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무관세 여부 등 구체 사항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약품 최혜국 대우 관세율은 15%다. 원래는 무관세였던 의약품에 15%가 붙는 격이라 수익성 부담은 따른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미 수출을 하는 기업 한 관계자는 “관세가 유럽과 일본 수준으로 결정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원래 무관세였던 것이 15%로 오른 것이라 기업으로선 예년보다 절대적인 수익성은 악화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약값 인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제약·바이오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지갑을 닫고 투자 축소 기조를 이어가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 수출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영향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이 관세 정책과 더불어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도 관세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국 내 생산 시설 확보를 추진해 왔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약 4600억원에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맺었고, SK바이오팜은 작년 위탁생산(CMO) 시설을 마련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생산 시설 변경 승인을 받았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캐나다와 미국 생산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올 자세한 관세 관련 내용을 주시해 최적의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아직 모든 절차가 확정되지 않아 지켜봐야겠지만 관세 관련 리스크(위험)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