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처럼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심부름도 척척 해준다. 괴한이 나타났을 땐 경호원처럼 앞장서 나서면서 위협을 물리친다. 수호천사 같은 이 로봇은 이른바 ‘사용자 추종 로봇(Follow-Me Robot)’이다. 앞서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공처럼 생긴 로봇이 공안과 함께 순찰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사용되는 기술이 일반 소비자를 위한 개인용 추종 로봇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 출연 연구원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사용자 추종 로봇 기술을 비롯해 인공지능(AI), 반도체·디스플레이, 차세대 통신, 첨단 모빌리티, 바이오, 로봇·제조, 양자 등 10개 분야의 60개 유망기술을 27일 선정 발표했다. ETRI가 1~2년 안에 개발을 완료할 예정인 기술을 공개해 관련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시장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수행 비서’ 보편화 시대
ETRI는 사용자를 따라다니며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는 추종 로봇의 핵심 기술로 위치 추정을 꼽았다. 전파와 카메라를 조합해 사용자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은 성숙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을 결합해 자율적으로 이동하는 사용자 추종 로봇이 급속도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누구나 ‘수행 비서’를 데리고 다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를 비롯해 시장조사 기관들은 사용자 추종 로봇을 비롯한 개인용 로봇 시장 규모가 지난해 40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서 연평균 15~17%씩 성장해 2030년에는 약 100억달러(약 14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ETRI는 대형 물류 창고, 농업 현장, 골프장, 병원, 쇼핑몰 등에서 사용자 추종 로봇이 널리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 해설 대체하는 e스포츠 중계
e스포츠는 유명 스트리머나 프로게이머 출신 해설자가 중계를 맡는 경우가 많지만, AI가 조만간 그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전망이다. ETRI는 ‘AI 기반 e스포츠 중계 자동화 기술’을 유망 기술로 선정했다. AI가 경기 흐름을 실시간 분석하고, 선수의 전략 변화나 전황의 전환점을 감지하고 해설하는 수준까지 기술이 성숙했다는 평가다.
기존 중계는 해설자의 경험에 의존하지만, AI는 수많은 경기 데이터를 학습해 ‘승부처가 어디인지’ ‘어떤 스킬 선택이 전세를 뒤집는지’ 등을 즉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방송사는 별도의 중계 인력 없이도 e스포츠 콘텐츠를 제작·송출할 수 있고, 개인도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AI를 통해 자동으로 분석받는 ‘1인 중계 시대’가 열린다. 축구·농구 등 전통 종목의 학교·클럽 리그에서는 픽셀롯(Pixellot)을 비롯한 기업들이 상용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울증 발생 예측 기술도 유망
ETRI가 유망 기술로 선정한 ‘우울증 사전예방 AI 프레임워크’는 사용자의 표정 변화, 음성 톤, 수면 패턴, 소셜미디어 사용 형태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AI가 종합 분석해 우울증 발생 가능성을 조기에 감지하는 기술이다. 지난달 일본 와세다대 연구팀은 AI로 대학생들 얼굴 표정에서 ‘숨겨진 우울증’ 징후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밝혔다. AI가 눈과 입 주변의 미세 움직임을 바탕으로 대학생의 잠재적 우울 성향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TRI에 따르면, AI 기반 정신 건강 관리 시장은 2023년 11억3000만달러에서 2030년 약 50억8000만달러로 연평균 24% 성장할 전망이다. AI가 개인 상담은 물론이고 약물 치료 등 병원 진료 권고로 자동 연계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산악·재난 현장에서 실종자를 수색하고 구조하는 드론 기술도 ETRI의 유망 기술로 선정됐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가 닿지 않는 지하철·터널·광산·지하 상가 등에서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도 미래 산업을 선도할 유망 기술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