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상과학(SF) 영화는 ‘인터스텔라’(2014년)와 ‘프레스티지’(2006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두 작품 모두 영화 ‘오펜하이머’(2023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올해가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양자 과학기술의 해’인 것을 계기로 세계 물리학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SF 영화’를 조사한 결과를 지난 24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놀런 감독의 ‘프레스티지’와 ‘인터스텔라’를 최고의 SF 영화로 꼽았다.
프레스티지는 1890년대 후반 런던을 배경으로,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와 알프레드 보든(크리스찬 베일) 두 마술사가 ‘텔레포트(teleport·순간 이동)’ 마술로 경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텔레포트는 사람을 기본 입자로 분해한 뒤 에너지 형태로 전송하고, 도착지에서 다시 물질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먼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한다는 SF적 개념이다. 이 영화에서 보든은 자신의 일란성 쌍둥이를 숨겨 텔레포트 마술을 펼치는 반면, 앤지어는 실존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데이비드 보위)의 도움을 받아 순간이동 장치를 만든다. 이 영화에 대해 배리 루오칼라 카네기멜런대 물리학과 교수는 네이처에 “어릴 적 느꼈던 마술과 환상에 대한 매혹을 절묘하게 되살리면서, 순간이동이라는 과학 개념을 대담하고 허구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과감히 도약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인터스텔라는 은퇴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 조셉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블랙홀 인근의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아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건설하기 위해 웜홀을 통과하는 임무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쿠퍼는 이 여정이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할 임무’로 계획됐다는 사실과, 웜홀의 존재가 자신을 포함한 미래 인류의 과학 기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클라우디아 드 람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물리학과 교수는 “이 영화는 실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고, 현존하는 물리학 이론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영역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카이 리우 미국 조지타운대 물리학과 교수도 네이처에 “시간과 공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우주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개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네이처는 인터스텔라가 개봉됐을 당시 많은 물리학자가 단체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관람했다고 전했다. 이 영화의 과학 자문을 맡은 킵 손 캘리포니아공과대 물리·수리·천문학부 교수는 개봉 3년 후인 2017년 중력파 연구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밖에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로는 ‘스타트렉4: 귀환의 항해’(1986년), ‘백 투 더 퓨처2’(1989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년)가 꼽혔다. ‘스타트렉4’가 개봉된 1986년 당시 ‘투명 알루미늄’은 공상과학적 상상력에 불과했지만, 이후 실제로 이와 유사한 특성을 갖춘 신소재가 개발되면서 ‘영화가 미래 기술을 앞서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 투 더 퓨처2의 ‘호버보드’ 역시 영화에서는 공상으로 등장했지만, 현재는 실험 단계에서 실제 구현 가능한 기술로 발전했다. 아직 영화처럼 일상에서 사용할 정도의 대량 생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영화가 과학자들에게 기술적 영감을 준 사례로 꼽힌다.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는 악당이 입자 가속기를 가동해 평행 우주를 열려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리학자들은 “이 장면의 가속기 설치 구조가 실제 실험 환경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재현했다”며 “스위스 제네바 인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 내 검출기 구조와 거의 동일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