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진 시퀀싱 센터의 수동 작업 실험실. / 노보진

국내에 진출한 중국의 유전체 분석 기업이 한국인 유전체 정보를 해외로 반출해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우리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체는 유전적 특성과 질병 위험, 약물 반응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전 정보의 총합으로 가장 중요한 생체 정보(바이오 데이터)다.

24일 본지가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보건복지부 답변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유전체 등 인체 정보의 국외 반출 승인과 신고에 대한 집계와 점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유전체 등 인체 정보의 국외 반출 승인·신고에 관한 조항이 없다”고 밝혔다. 관련 법률이 없어 유전체 정보 국외 반출을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전체 정보 해외 유출과 관리를 엄격히 하는 주요국과 대비된다. 보건복지부는 또 외국 유전체 분석 기업의 현황, 실제 분석이 이뤄지는 해외 거점, 외국 유전체 분석 기업과 계약 체결 현황 등에 대해서도 “관련 법률에서 규율하지 않은 사항으로 해당 자료가 없다”고 했다.

건강관리협회 본부 건물 들어간 노보진 한국건강관리협회 본부 5층에 입주한 바이오 기업들. 점선으로 표시한 회사가 노보진이다. /곽수근 기자

◇中 노보진, 한국인 생체정보 모이는 건물에 입주까지

지난 1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국건강관리협회 본부. 8층 건물의 4개 층은 협회 산하 전국 17개 지부 건강검진센터에서 보내온 검체 등을 분석하는 중앙검사본부였고, 5층 공유 실험실 ‘메디 오픈 랩’에는 바이오 스타트업 등 17곳이 입주해 있었다. 5층 공유 실험실 출입구 한쪽 벽에 붙은 입주 회사 명판 한가운데 ‘Novogene(노보진)’이 눈에 띄었다. 유전체 분석 서비스 매출 기준으로는 세계 최상위 수준인 노보진은 베이징에 본사를 둔 중국 기업이다. 지난 6월 노보진 코리아를 세우고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유전체 분석을 수주하고, 확보한 시료를 중국과 싱가포르 분석 센터로 보내 유전체 분석을 수행해 논란이 돼왔다. <본지 8월5일자 A10면 보도> 한국건강관리협회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협회 본부 건물에 노보진 코리아가 입주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노보진이 자회사로 노보진 코리아를 세우자 국내에서 생체 정보 해외 반출 우려가 나왔는데, 주무 부처가 사무실 소재조차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본지에 “노보진의 건강관리협회 건물 입주 관련 내용은 9월 중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자료 요구를 통해 파악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현국

◇노보진 “한국인 유전체 중국에서 분석”

노보진은 유전체 분석 기업 BGI(베이징 유전체학 연구소)에서 부사장을 지낸 리뤼창이 지난 2011년 설립했다. BGI는 52국 800만명 이상의 임신부 유전체 데이터를 중국 인민해방군과 공유했다는 의혹을 받아 미 의회가 입법을 추진 중인 ‘바이오 보안법’의 규제 기업으로 명시돼 있다. 노보진은 2023년 대만 학교·병원 등에서 유전체 검사를 저가에 수주한 뒤 중국으로 반출해 논란을 불렀다. 이주영 의원은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전체 국가 건강검진의 약 10%를 담당하며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고 한다”며 “이를 활용해 통합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고 공유 실험실 홍보에서 강조했다”고 했다. 노보진코리아가 건강관리협회 본부 건물에 입주한 배경이 한국인 건강 검진 데이터 확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픽=김현국

이에 대해 노보진은 본지에 “한국에서 수집된 샘플은 중국 또는 싱가포르에 있는 노보진 시설로 이송돼 분석이 수행된다”며 “개인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처리하지 않으므로 개인 정보 노출 위험은 없다”고 했다. 중국으로 가져가 분석하는 유전체가 누구의 유전체인지 개인별로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건강관리협회 건물 입주와 관련해서는 “협회의 생물학적 샘플, 건강 데이터베이스 또는 내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인체 정보 보호법 필요”

과학기술계에서는 노보진 주장대로 유전체를 개인별로 구별하지 않더라도 생체 정보 자체가 국가 안보와 직접 관련되는 사안이어서 국외 반출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한국인의 생체 정보를 대량으로 확보하면 한국인이 취약한 질병을 파악하고 이를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처럼 외국에 치료약을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인을 겨냥한 생체 무기를 개발하는 데 유전체가 악용될 수도 있다.

주요국들은 유전체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인류 유전자원 관리조례로 유전체 정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지정하고, 국외 반출을 사전 허가·보안심사 대상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유전체 등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한 ‘우려 국가’ 접근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미국은 올해 법무부가 구체적 시행 규칙을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1월 BGI와 MGI 등 중국 유전체 분석 기업을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등재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유럽보건데이터공간(EHDS) 규정을 발효해 유전체 등 생체 정보를 국가가 통합 관리하고 연구용 사용도 보안 규정을 통해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지아 의원은 “해외에선 유전체 등 인체 정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정부가 국외 반출도 방관하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국민의 인체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유전체(genome)

생명체가 가진 모든 유전 정보의 총합.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질병 위험, 약물 반응, 조상·집단적 유래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정밀 의료와 바이오 연구의 핵심 기반이 된다. 또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고유한 생체 정보로, 지문보다 더 정밀한 ‘개인 식별자’로 간주돼 고도의 민감 정보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