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연한인 40년을 넘겨 2023년 4월 전력 생산을 멈춘 고리 원전 2호기에 대한 재가동 승인이 또다시 미뤄졌다. 현재 운전면허 연한이 끝나 가동을 멈추거나 멈출 예정인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3·4호기 등 다른 원전의 재가동 승인도 줄줄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가운데 기존 원전의 운전면허 연장이 지연되면 상대적으로 비싼 LNG 발전을 써야 해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변화와 인공지능(AI) 시대 폭증하는 전력 수요 대응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3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2호기의 계속 운전 여부에 대한 안건을 심의했지만 결정을 보류하고, 다음 달 13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달 말에도 한 차례 논의를 했지만 일부 위원이 “항공기 테러 위험 확률을 따져봐야 한다”며 문제 삼고 나오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고리 2호기 가동이 멈추면서 하루 13억원가량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며 “원안위가 너무 안일하게 국가 중요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고리 2·3·4호기 가동 중단 길어질 듯… AI 전력 수요 폭증에 대응 못 할 우려
2023년 4월 멈춘 고리 2호기는 이번 회의에서 허가가 났어도 재가동 준비 기간이 필요해 일러야 내년 상반기 재가동이 가능했다. 문제는 재가동 허가가 미뤄지면 10년 재가동 승인이 나더라도 재가동할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10년 연장은 가동을 중단한 시점부터 계산한다. 승인이 늦어질수록 재가동 기간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2023년 4월 가동을 중단한 고리 2호기는 오늘 당장 승인을 받아 재가동해도 이미 허비한 31개월을 뺀 7년 반 정도만 가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전 면허 연장은 전력을 생산하면서 신청하는 게 일반적인데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재가동 신청이 늦어졌다. 고리 2호기 이외에도 원전 9기의 면허 연장 심사가 진행 중인데 줄줄이 연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고리 2호기를 비롯해 고리 3·4호기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고리 2호기는 가압 경수로 방식의 출력 685메가와트(MWe)급 원전으로 1983년 4월 9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2023년 4월 8일 설계 수명 40년에 도달해 가동을 멈췄다. 이에 앞서 한국수력원자력은 2022년 4월 원안위에 고리 2호기의 가동 연한을 10년 더 연장해 달라는 계속 운전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한 심의·의결이 늦어지면서 고리 2호기는 2년 7개월째 멈춰 선 상태다. 원전 업계에서는 이 기간 국가적 손실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고리 2호기 가동 중단으로 생산하지 못한 전력을 수입 LNG로 발전했을 때 더 든 비용을 추산한 것이다.
이날 원안위 회의는 7명이 참석했다. 원안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9명이지만, 국민의힘 추천 위원 2명 임기가 지난 12일 끝났기 때문이다. 이날 원안위 회의에서 고리 2호기의 안전과 관련된 사고관리계획서는 승인됐다. 사고관리계획서는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대 사고를 비롯해 다양한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을 담은 문서다. 1호 안건으로 상정돼 표결에서 찬성 6명, 반대 1명으로 통과됐다. 이어서 2호 안건으로 상정된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허가 안은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진재용 위원(법무법인 강남 변호사)의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관련 문제 제기로 위원 간 의견이 갈리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해외에선 원전 운영 기간이 만료된 상업용 원전의 대부분이 계속 운전 허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엔 상업용 원전 92기 중 84기(약 91%)가 기존 40년 수명에 20년씩 추가로 허가를 받았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5년 동안 전 세계 약 60개 이상의 원전이 계속 운전 승인을 받았고, 이는 전체 원전의 약 15%에 해당한다.
원안위가 고리 2호기 재가동 승인을 다음 회의로 미루면서 앞으로 안정적 전력 공급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고리 2호기를 포함해 현재 한수원이 계속 운전 신청을 해 놓은 원전은 총 10기다. 설비 용량 기준으로 국내 전체 원전의 30%에 달한다. 오는 12월 가동 연한이 끝나는 한빛 1호기도 지금 상황으로는 중단이 불가피하다.
한편 이날 환경운동연합과 탈핵 단체는 원안위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불법 심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이 단체들은 지난 20일 원안위 심의 절차가 위법하다며 심의 무효 확인 소송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