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살이 빠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심혈관에 혜택을 주는 것은 비만이 아니거나, 체중을 줄이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존 딘필드(John Deanfield) 교수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하고 허리둘레가 5㎝ 줄어들 때마다 심혈관 질환 위험이 평균 4% 줄어든다”고 국제 학술지 ‘랜싯(Lancet)’에 22일(현지 시각) 밝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이다. GLP-1은 식후 소장에서 분비된다. 췌장에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은 억제한다. 뇌에서 식욕을 억제하고 음식이 위를 떠다니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높인다.
연구진은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 제곱으로 나눈 값)가 27을 넘으면서 45세 이상인 과체중·비만 성인 1만7604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당뇨병 환자는 없었지만 모두 심혈관 문제는 있었다. 이들은 1주일에 1회 집에서 허벅지, 복부에 세마글루타이드를 주사했다. 용량은 0.24㎎에서 시작해 0.5㎎, 1㎎, 1.7㎎, 2.4㎎로 차츰 늘렸다.
앞서 연구진은 2023년 세마글루타이드가 심장마비와 뇌졸중 또는 다른 심장 질환의 위험을 20% 감소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연구진은 살이 빠져서 나타난 효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임상시험 데이터를 심층 분석했다.
그 결과 체질량지수가 27 이상이거나 44인 경우 비슷하게 심혈관 질환 위험이 낮아졌다. 적당히 뚱뚱하든 심하게 비만이든 모두 심혈관 질환 위험이 낮아졌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실험 초반 20주간 몸무게가 줄어든 것은 심혈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복부 지방은 심혈관 질환과 관련이 있었다. 허리둘레가 줄면서 심혈관 질환 위험도 낮아졌다. 연구진은 “복부에 있는 내장 지방이 (피부 밑에 있는) 말초 지방보다 심혈관에 해롭다”고 밝혔다.
영국 심장 재단 임상 책임자인 소냐 바부나라얀(Sonya Babu-Narayan) 박사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 “체중이나 지방 감소 외에도 혈관 건강 개선, 혈압·혈당 조절 또는 염증과 같은 심혈관계 혜택의 다른 작용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UCL 연구진도 “연구 대상이 주로 백인 남성인 것은 한계”라고 했다
영국 세필드대학 팀 치코(Tim Chico) 교수는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먹는 아스피린, 스타틴 같은 약물에 세마글루타이드를 추가하면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약만 먹으면 안 되고 건강한 식단과 신체 활동, 금연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 자료
Lancet(2025), DOI : https://doi.org/10.1016/S0140-6736(25)013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