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포스터./tvN

“드라마를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맛있다’는 감탄 뒤엔 늘 과학 원리가 있습니다”

23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서 차광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가 매일 하는 요리를 화학과 생물학, 공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차 연구원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고기를 굽는 장면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고기의 겉이 갈색으로 변하며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갈색화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드라마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비영어 TV 부문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차 연구원은 “당과 아미노산이 섭씨 120도 이상에서 만나 풍미를 가진 수백 가지 화합물을 만든다. 빵 껍질의 향, 커피 향도 같은 원리”라며 “이 과정에서 항산화와 항염 효과를 가진 천연 화합물도 만들어지지만, 과열되면 아크릴아마이드 같은 유해 물질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 고기 맛을 높이는 마이야르 반응을 설명하고 있다./방송 캡처 사진

드라마에서 화제를 모은 또 다른 요리 기법인 ‘수비드(Sous-vide)’도 언급했다. 수비드는 프랑스어로 ‘진공 상태’란 뜻으로, 진공 포장한 고기를 50~60도 사이의 일정한 온도에서 천천히 익히는 방법이다.

차 연구원은 “피부, 뼈, 연골 등 다양한 신체 조직을 지탱하는 단백질인 콜라겐은 58도 이상에서 풀려 고기를 부드럽게 하지만, 68도를 넘기면 근육 단백질인 액틴이 변성돼 질겨진다”며 “수비드는 그사이, 단백질이 가장 부드럽게 변하는 구간을 이용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중기 시대로 간 주인공은 그 당시 없던 압력솥도 만들어 요리에 썼다. 차 연구원은 그 장면에 대해 “압력이 높아질수록 끓는점이 상승하기 때문에 압력솥 속 물은 100도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며 “이러면 닭의 단백질이 효율적으로 익어 삼계탕 속 닭고기가 더 쫄깃해진다”고 덧붙였다.

차광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강릉=홍아름 기자

차 연구원은 식재료의 빨간색과 초록색, 보라색을 내는 색소에 들어 있는 과학도 설명했다. 그는 “토마토의 붉은색을 내는 색소는 카로티노이드, 가지의 보라색은 안토시아닌으로, 항산화 기능을 하거나 신경 전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며 “몸속 미생물은 이런 색소를 분해해 또 다른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했다.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인터뷰에서 차 연구원은 “요리한 음식을 먹은 이후에도 몸속에서 과학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색소인 베타카로틴이 장내 미생물을 먼저 만난다”며 “미생물은 천연물을 다른 활성물질로 바꾸고, 그게 흡수돼 효과를 내기도 한다”고 했다.

차 연구원은 미생물학과 화학, 생물공학, 생물정보학, 보건학을 아우르는 시스템 미생물학자다. 강릉 천연물연구소 설립 때 합류해 20년 넘게 천연물 연구를 했다. 그는 현재 맞춤형 장내미생물 소재와 전달체 개발, 난치 질환의 장내 바이오마커(생체 지표) 발굴 연구를 수행 중이다.

차 연구원은 “같은 홍삼을 먹어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른 이유는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어떤 미생물은 홍삼 속 성분을 더 강력한 형태로 바꾸기도 한다. 앞으로는 이런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식품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해다.

인공지능(AI)과 천연물 연구의 결합 가능성도 제시했다. 차 연구원은 “천연 성분은 하나가 아니라 수천 개가 섞인 물질”이라며 “AI가 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학습하면, 어떤 조합이 인체에 가장 유익한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