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MD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은 코로나 백신을 맞은 일부 암 환자들이 백신을 맞지 않은 환자보다 훨씬 오래 생존했다는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연구는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조선일보 DB

코로나 mRNA 백신이 뜻밖에도 폐암·피부암의 면역 치료 효과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주 MD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은 코로나 백신을 맞은 일부 암 환자가 백신을 맞지 않은 환자보다 훨씬 오래 생존했다는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연구는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백신이 암 치료제 효능을 끌어올렸다”

연구팀은 1000명 이상의 폐암 및 피부암(흑색종) 환자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암 치료 시작 후 100일 이내에 코로나 mRNA 백신을 접종한 환자는 생존 기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령 폐암 환자의 경우엔 평균 생존 기간이 21개월에서 37개월로 늘었다. 또한 피부암인 흑색종을 앓고 있는 환자 중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은 평균 생존 기간이 27개월이었지만, 백신을 맞은 이들은 데이터 수집이 끝날 때까지 평균 생존 기간을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생존했다.

◇코로나 백신이 면역 치료제 ‘부스터’ 역할

특히 기존 면역 치료제에 잘 반응하지 않던 환자일수록 생존 기간이 크게 늘었다.

면역 치료제는 흔히 면역관문 억제제라고도 불린다. 암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걸어놓은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해, 몸의 면역 체계가 암세포를 다시 공격하도록 돕는 약이다. 폐암·피부암 등에서 큰 효과를 보여왔지만,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은 면역 반응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약효가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면역 치료제를 투여해도 면역 반응이 충분치 않던 환자들이 코로나 mRNA 백신을 맞으면, 백신이 ‘잠든 면역계’를 깨우는 부스터 역할을 한다고 봤다.

동물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백신의 지질 나노입자(LNP)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 강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면서 면역세포(T세포)를 활성화했다. 코로나 mRNA 백신이 세포의 공격력을 유지시켜 암세포 사멸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를 이끈 방사선 종양학자 애덤 그리핀은 “mRNA 백신이 전신 면역계를 깨워, 종양 내부에서도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접종 시기 관건”

다만 효과는 백신 접종 시점에 따라 달랐다. 치료 시작 100일 이내, 특히 치료 전후 30일 안에 코로나 mRNA 백신을 맞은 환자가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반면, 독감이나 폐렴 백신처럼 mRNA 기술이 아닌 백신에서는 이런 생존 향상이 보이지 않았다.

옥스퍼드대의 종양 면역학자 브누아 반덴엔데 교수는 “이 정도 생존 향상은 매우 놀랍다”며 “코로나 백신이 값비싼 맞춤형 암 백신을 보완하는 저비용 치료 수단이 될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연구진은 현재 임상 시험을 바탕으로 결과 검증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mRNA 기술 연구 지원금 5억달러를 삭감한 만큼, 관련 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계속 나온다. 이에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스티븐 린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는 “정치적 논란이 환자 치료 기회를 막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