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연구진이 집 안의 사물 인터넷(IoT) 센서만으로 사람이 우울하고 불안한 정도, 스트레스 수준 등을 감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의진 전산학부 교수팀의 연구 결과다. 국제 저널 ‘ACM IMWUT’ 2025년 9월호에 실렸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워치처럼 사용자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기기가 아니더라도, 냉장고나 매트리스, 조명이나 온도 센서로 얻은 데이터를 모아 이용자의 정신건강 변화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향후 개인 맞춤형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 개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 심할수록 냉장고 문 더 자주 연다”
KAIST 이의진 전산학부 교수팀은 데이터 수집을 위해 청년 1인 가구 20세대를 모아, 이들을 4주 동안 관찰·분석했다. 이들이 집 안의 각종 가전제품, 수면 매트, 조명, 온도 센서 등을 이용한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를 스마트폰·웨어러블 기기 데이터와 함께 분석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매일 또는 주 2회 정도 간단한 자가 심리 설문도 하도록 했다. ‘최근 2주 동안 의욕이 없거나 기운이 빠진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나?’ ‘걱정이 너무 많아 집중하기 어려운 적은 얼마나 자주 있었나’ 같은 질문에 답하게 하는 식이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스마트폰·웨어러블 기기만으로 측정할 때보다 가정 내 IoT 데이터를 추가하면 참가자들의 정신 건강 변화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가령 참가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냉장고 문을 더 많이 열고 닫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폭식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침대 매트리스의 수면 센서를 통해선 참가자들의 하루 수면 시간을 측정했고, 이를 통해 수면 시간과 우울·불안·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수면 시간이 줄어들수록 불안한 정도가 매우 유의미하게 올라갔다고 봤다.
벽에 설치된 센서(온도·습도 센서)로 실내 온도를 측정한 뒤, 온도와 우울·불안의 연관성도 살폈다. 실내 온도가 높을수록 사용자의 우울·불안도 높은 축에 속했다. 다만 연구팀은 “온도 상승이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했다. 움직임이 줄고 따뜻한 실내에만 있어서 우울한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 커져서 저도 모르게 난방 온도를 올리는 것인지 명확하진 않다는 얘기다.
◇“스마트홈이 마음 주치의 되나”
연구팀은 “가정 내 IoT 데이터가 개인의 생활 맥락 속에서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참가자들 역시 “생활이 마음 상태를 이렇게 반영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스마트홈이 사람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마음 주치의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의진 교수는 “향후 AI(인공지능)를 활용해 개인별 생활 패턴을 예측하고 맞춤형 코칭도 가능한 원격 의료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LG전자-KAIST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센터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