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전경. KINS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원자력 안전 규제 전문기관이다./KINS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내부 임직원의 자료 유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원전 업계에서 기술 보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전 기업들은 원전 건설, 운영, 해체 등 과정에서 원자력 안전 규제 전문 기관인 KINS의 안전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각종 기술 자료를 제출한다. 신고리 3·4호기, 신한울 1·2호기에 적용된 한국형 신형 경수로(APR1400)는 설계 심사, 공정 검사 등을 원안위와 KINS가 맡아 수행하는데, 원자력 업계 등에 따르면 제출된 APR1400 관련 자료를 KINS 임직원이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해 7월 임기 도중 해임된 전(前) 원장이 직원들을 동원해 APR1400 관련 문서를 외부로 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 업계 일각에서는 “규제 기관을 믿고 핵심 기술 자료까지 제출하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며 “KINS 임직원이 자료를 무단 반출해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픽=백형선

◇前 원장이 재임 당시 자료 반출

KINS는 전 원장인 A씨가 APR1400을 비롯해 방대한 자료를 유출한 사실을 최근 파악했다. 국정원도 이를 확인했고, 원안위 감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KINS, 원안위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A씨 요구에 따라 KINS 간부 B씨 등은 2023년 10~12월 APR1400 관련 심사·검사 문서를 비롯해 내부 자료들을 내려받아 이동식 저장 장치로 반출했다. 이 과정에 KINS 보안 관계자는 보안 관련 외부 용역 직원의 PC 보안 통제를 해제해 범행을 방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서를 다운로드받은 기록도 모두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형두 의원은 “로그 기록 삭제는 A씨가 원장에서 물러나기 두 달 전까지 이어졌다”며 “반출된 자료 규모는 10만건 이상이고 총량은 100GB(기가바이트)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본지에 “퇴직 후 원자력 관련 저술 활동을 하기 위해 원자력 안전 관련 현안 자료를 마련해달라고 직원에게 얘기해 받은 것”이라며 “인허가 관련 자료는 원안위 회의를 통해 다 공개되는 것이니 산업 기밀 유출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적용된 APR1400은 UAE에 모든 자료를 다 제공한 상태여서 유출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작년 원장에서 해임된 이유였던 특혜 채용 사안도 결국은 무혐의로 결론 난 것처럼 이번 유출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KINS 측은 “반출 자료 중에는 공개된 자료가 다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반면 원안위 관계자는 “KINS 전 원장의 자료 반출은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했다.

◇하드디스크 통째 가져간 직원도

KINS는 지난 6월 16일 내부 전산망 정기 검사를 하다가 직원 C씨가 닷새 전 한꺼번에 수많은 업무 자료를 자신의 업무용 PC에 내려받은 정황을 파악했다. 당시 C씨는 명예퇴직 신청을 하고 일주일간 연차 휴가 중이었다. KINS는 C씨 사무실에서 업무용 PC를 확보해 열어본 결과, 내부 하드디스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C씨가 하드디스크를 반납한 날은 6월 18일. C씨가 무단 반출한 지 일주일 만에 KINS로 회수된 것이다. C씨는 KINS에 퇴직을 앞두고 개인 소장 목적으로 가져갔고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KINS에 C씨 자료의 해외 유출 정황은 없지만, 국내 유출 가능성 확인을 위해 조사와 수사 의뢰 등을 권고했다. 현재 대전 유성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C씨가 반출한 자료는 원자력 국가 자격 시험 관련 파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형두 의원은 “KINS 전 원장과 간부의 조직적 자료 유출과, 이와는 별개로 다른 직원의 하드디스크 반출은 KINS 내부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세계가 치열하게 기술 경쟁을 벌이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비롯해 차세대 원전 관련 핵심 기술이 유출될 경우에는 우리 원전 산업이 치명적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