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르신이 100세 생일날 축하 케이크 앞에 앉아있는 모습. 110세 넘게 장수한 이들의 유전자를 이용해 조로증 치료에 성공한 연구 결과가 1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신호 전달과 표적 치료’에 소개됐다. /조선일보 DB

110세 넘게 장수한 이들의 유전자를 이용해 조로증 치료에 성공한 사례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틀 대학과 이탈리아 멀티메디카 공동 연구팀이 110세를 넘긴 이들의 ‘장수 유전자’를 이용해 조로증에 걸린 환자의 노화를 어느 정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신호 전달과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16일 공개됐다.

◇110세 장수 유전자로 ‘조로증’ 고친다

조로증은 남들보다 수십 년 일찍 노화가 진행되는 희귀 유전 질환이다. 세포 DNA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굳어지면서 신체와 장기가 노화 증상을 보인다. 얼굴에 주름이 심하게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지며 심혈관 질환을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0만명 중 1명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로증을 앓고 있는 어린 여아의 모습.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조로증은 LMNA 유전자가 고장 나면서 생기게 된다. 이 유전자는 세포핵을 단단히 지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변이가 생기면 ‘프로제린’이라는 독성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 독성 단백질이 세포에 쌓이면 핵이 찌그러지고 세포가 급격히 늙는다. 조로증에 걸린 아이들이 때 이른 노화를 겪는 이유다.

연구진은 이에 110세가 넘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초고령자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LAV-BPIFB4’라는 장수 유전자를 찾아냈다. 노화가 찾아와도 혈관과 심장을 튼튼하게 유지하게 도와주는 유전자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의 유전자를 조작, 조로증에 걸리게 만든 뒤 여기에 장수 유전자를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장수 유전자가 몸에 들어오자 쥐들의 굳었던 심장 근육은 다시 부드럽게 움직였고 잘 뛰기 시작했다. 심장 섬유화(조직이 굳는 현상)도 줄어서 새로운 미세혈관이 자라났다. 노화 지표 단백질의 양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연구팀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도 진행했다. 조로증 환자 3명과 그들의 건강한 부모 5명에게 장수 유전자를 주입하는 실험이었다. 환자들은 이후 세포의 손상 반응과 노화 신호가 눈에 띄게 줄었다. 다만 독성 단백질의 양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세포 자체가 그 독성을 이길 힘을 얻어 다시 복구된 것”이라며 “장수 유전자를 활용하면 세포의 회복력과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을 보인다”고 했다. “110세까지 건강하게 산 사람의 유전자 속에 노화를 견디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