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예방 백신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은 물론 치매 예방 효과까지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원인 규명에 나섰다. 사진은 의료진이 대상포진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고대안암병원

지난 15일 차백신연구소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CVI-VZV-001’에 대한 국내 임상 2상 시험 계획(IND)을 신청했다. 회사는 앞서 임상 1상 시험에서 안전성은 물론, 모든 대상자에서 항체가 두 배 이상 증가하는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상포진은 수두를 일으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신경계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재활성화하면서 발생한다. 피부 발진과 심한 신경통을 일으키는 흔한 질환으로,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겪는다. 대상포진은 한 번 발병하면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합병증을 남길 수 있어 예방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개발된 대상포진 백신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지만, 접종 후 통증이 크고 가격 부담이 단점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의 독주 체제에 도전하며, 통증과 비용을 낮춘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백신은 대상포진 바이러스 자체로 만들지만, 국내 기업들은 바이러스의 단백질만 투여하는 차세대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그만큼 효과는 비슷하면서 부작용이 덜 하다는 장점이 있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릴 때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에 감염되면 온몸에 물집과 발진이 생기는 수두(varicella)가 발생한다. 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 잠복하고 있다가(가운데) 성인이 돼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다시 증식해 띠 모양 물집과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herpes zoster )을 일으킨다./MDPI

◇MSD 조스타박스 퇴출로 시장 요동

현재 시판 중인 대상포진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 재조합 단백질 백신(사백신) 두 종류로 나뉜다. 약독화 생백신은 살아 있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켜 만든다. 대표 제품으로는 세계 최초 대상포진 백신인 미국 머크(MSD)의 ‘조스타박스’와, 국산 백신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가 있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로 만든다. 바이러스 유전자를 중국 햄스터 난소(CHO) 세포에 넣고 배양한 뒤 해당 단백질을 정제한다. 이렇게 만든 바이러스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한다. 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싱그릭스’가 재조합 백신이다.

싱그릭스는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특정 단백질에 면역보조제(AS01B)를 결합해 면역 반응을 강화한 백신으로, 예방 효과는 97%에 달한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이후 세계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조스타박스는 상대적으로 효능이 낮고 고령층에서 면역 효과가 떨어져, 국내를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공급이 중단되면서 시장에서 밀려났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스카이조스터가 2017년 시장에 진입했다. 지난해 10월 MSD의 조스타박스 철수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국내 생백신 시장을 절반 이상 차지했다. 스카이조스터는 1회 접종으로 끝나고, 가격도 싱그릭스(2회, 평균 4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접종 후 팔 통증과 발열 등 부작용이 덜한 점도 장점이다. 스카이조스터는 현재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 확대를 위해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싱그릭스를 위협하기에는 여전히 효능 차가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카이조스터는 조스타박스와 마찬가지로 면역저하 환자나 고령층에서 예방 효과가 다소 떨어진다. 지난해 국내 대상포진 백신 매출은 싱그릭스가 420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스카이조스터와 조스타박스는 각각 187억원, 174억원에 그쳤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SK바이오사이언스

◇생백신의 한계, 유전자 재조합으로 공략

최근 국내 기업들은 기존 백신의 한계를 보완한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C녹십자와 차백신연구소, 유바이오로직스가 개발 중인 대상포진 백신이 대표적이다.

현재 가장 앞서 있는 곳은 GC녹십자다. 미국 관계사 큐레보(Curevo Vaccine)를 통해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아메조스바테인(Amezosvatein)’의 임상 2상 시험을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싱그릭스와 직접 비교한 임상 2상에서 백신 접종자 전원(100%)이 면역 반응을 보였고, 싱그릭스보다 부작용이 적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큐레보는 내년까지 시험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임상 3상에 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GC녹십자는 임상시험용 백신 생산뿐 아니라 향후 상업화 물량의 위탁생산(CMO)도 맡았다.

차백신연구소는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VZV-001에 독자 개발한 면역증강제 ‘리포팜(Lipo-Pam)’을 결합했다. 리포팜은 항체가 아닌 T세포가 직접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파괴하는 세포성 면역반응을 유도해, 기존 생백신에서 나타난 고령층 면역 반응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회사는 VZV-001이 싱그릭스와 같은 재조합 단백질 방식이지만, 접종 후 통증 등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차백신연구소 관계자는 “임상 1상 세부 데이터를 보면 VZV-001은 싱그릭스 대비 통증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2상에서는 이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바이오로직스도 자체 단백질 합성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백신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싱그릭스가 효능 면에서는 독보적이지만, 가격·보관 조건·통증 문제 등 여전히 공백이 있다”며 “국산 백신이 이런 틈새를 공략한다면 시장 판도 변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상포진은 환자가 많은 만큼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전 세계 대상포진 백신 시장이 지난해 47억8000만달러(한화 6조6700억원)에서 2030년 112억6000만달러(15조7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대상포진 백신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은 물론 치매 예방 효과까지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