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간 피부세포로 기능적인 난자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완성 단계에 진입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생물학적 어머니의 난자 없이도 아기를 출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와 한국 차의과대 공동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 성과다.

본래 생식은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가 만나 수정된 뒤 9개월이 지나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이다. 연구팀은 먼저 사람의 피부 세포에서 핵을 추출하고, 이 핵을 유전 정보가 제거된 기증 난자 속에 넣은 뒤, 세포 분열 과정을 거쳐 난자가 염색체 절반을 버리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82개의 기능성 난자를 만들어냈다.

사람의 체세포(피부 세포)에서 핵을 제거해 만든 난자(오른쪽 큰 원)의 모습.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연구팀은 이들 난자를 정자와 수정시켰다. 이 가운데 일부가 초기 배아로 발달했다. 오리건 보건과학대 배아세포·유전자 치료 센터 관계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을 이뤘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아직 완성 단계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본다. 생성된 난자의 대부분(91%)이 수정 이후 발달이 진행되지 않아 성공률은 9% 정도에 그친다. 성공한 경우에도 6일 이상 발달하지는 못했다. 일부에서는 염색체 이상이 발견됐다. 현재로서는 임상에 적용할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앞으로 정자나 난자가 없어 체외수정을 받을 수 없는 부부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난자가 없는 고령 여성이나 정자 생산이 부족한 남성, 암 치료로 불임이 된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영국 에든버러대 생식 건강 연구소 부소장 리처드 앤더슨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중대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암 치료 등 다양한 이유로 난자를 잃고 가족을 꾸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며 “피부 세포에서 새로운 난자를 만드는 능력은 생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진전”이라고 했다.